명확한 트리거·전조증상·증시 外 시장 충격 없어…
“국제유가·기준금리·환율이 향후 코스피 향방 가른다”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그동안의 경험 만으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든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
다수의 국내 증권가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내놓은 지난 5일 한국 증시가 경험했던 ‘대폭락’ 사태에 대한 평가다. 충분히 납득되지 않은 주가 하락이 주는 ‘공포’란 심리적 요인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패닉 셀(panic sell, 발작적 매도)’에 나섰다고 밖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증권가에서 통용되던 이성적 판단으로 지난 5일 폭락장을 설명하기 힘든 이유로 과거 수차례 코스피 지수를 강타했던 주가 급락 사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3가지 요소가 이번 국면에선 발견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7일 헤럴드경제는 국내 증권업계 내 다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1990년 이후 일간 기준 역대 코스피 지수 하락률 톱(TOP)7에 해당하는 급락장에 대해 분석했다. 지난 5일 코스피 지수가 기록했던 하락률 8.7%는 역대 5위 기록이었다. -234.64포인트란 코스피 지수 일간 낙폭은 역대 최대치다.
1無 : 명확한 대표 트리거가 없었다
지난 5일을 제외한 나머지 6건의 폭락장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투자자들이 투심이 위축될 만한 대형 사건이 먼저 발생한 이후 코스피 지수의 급격한 우하향세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12.0%를 기록하며 가장 큰 폭의 일간 하락률을 기록했던 지난 2001년 9월 12일은 ‘9·11 테러’로 잘 알려진 미국 본토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테러 공격 사건 다음날이었다. -11.6%로 하락률 2위를 기록한 지난 2000년 4월 17일에 앞서선 ‘닷컴 버블 붕괴’란 이벤트가 발생한 바 있다.
하락률 3위(2008년 10월 24일, -10.6%)와 4위(2008년 10월 16일, -9.4%) 모두 리먼브라더스 사태발(發) 글로벌금융위기의 여파로 벌어졌고, 6위(2020년 3월 19일, -8.4%)와 7위(1998년 6월 12일, -8.1%)는 각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란 결과물로 빚어진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현재 미국 경기가 본격적으로 침체 상태에 빠지지 않았고, 이란-이스라엘 간에 전면전이 발발한 것도 아닌 상황”이라며 “증시를 지배한 공포가 과도했고, 이에 따른 ‘패닉셀’이 이해하기 힘든 증시 폭락세를 불러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증시 내 인공지능(AI) 종목에 대한 버블 논란에 따른 매도세와 주가 급락에 따른 반대매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에 따른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등이 겹쳤을 가능성이 있지만, 과거 9·11 테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금융위기, 코로나19 사태 당시 만큼 지금이 위험한 지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2無 : 전조 증상이 없었다
지난 5일 폭락장이 다른 사건들과 구별되는 또 다른 지점은 폭락장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엿보이는 전조적 하강 곡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5일 폭락장세가 불거졌던 ‘검은 월요일’ 전 2개월 간 코스피 지수는 1.5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전 거래일에 벌어졌던 ‘검은 금요일(2일)’을 제외할 경우 상승률은 5.40%로 더 커진다.
반면, 9·11 테러란 급작스러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했던 2001년 9월 12일을 제외한 나머지 5개 폭락일 이전엔 코스피 지수의 약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러시아 디폴트 사태에 따른 폭락장(1998년 6월 12일) 이전 2개월 간 코스피 지수는 29.78%나 떨어진 상황이었고, 닷컴 버블 붕괴(2000년 4월 17일)에 앞서서도 코스피 지수는 8.96%나 이미 내려 앉았었다. 여기에 2008 글로벌금융위기(2008년 10월 24일)와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3월 19일)에 따른 급락장세 전 2개월 간에도 코스피 지수의 하락률은 각각 -30.6%, -29.3%에 달했다.
3無 : 증시 外 시장 충격이 없었다
지난 5일에 발생했던 코스피 붕괴 현상이 유독 특이했던 점은 과거와 달리 수많은 금융자본시장과 실물 시장 중에서도 주식 시장에만 소용돌이가 한정됐다는 점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최근 증시 폭락에 대해 “해외발 충격으로 주식 시장에 한해 조정돼 과거와는 상이한 이례적 상황”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전날 오전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최 부총리를 비롯해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에 참석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모두 과거 급락 시에는 실물·주식·외환·채권 시장에 실질적인 충격이 동반됐던 반면 이번 조정은 주식시장만 조정됐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른 상황이라고 봤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향후 코스피 향방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2010년 이후 코스피 지수는 밸류에이션상으로 주가수익비율(PER) 7.5~8배, 주가순자산비율(PBR) 0.76~0.8배 사이에 지지선을 형성했는데, 지난 5일 기록했던 최저가(2386,96)에 가까운 2360이 12개월 선행 PER 8배, PBR 0.78배 수준”이라며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주요 반도체 종목들의 호실적에 따른 상승 사이클이 아직 건재하다고 평가하는 만큼 급락했던 주가는 천천히 복원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번 급락세가 ‘심리적’ 요인에 따른 것인 만큼 공포심에 따른 변동장세가 예상보다 더 크게 발생할 수 있단 의견도 있다. 황세운 위원은 “투자자들이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작은 이벤트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시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발생하는 하락장이 국내 증시에선 더 증폭돼 나타난다는 점도 변수”라고 강조했다.
추세적인 반등세로 돌아서기 위해선 향후 제시될 각종 지표들이 중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막바지로 향하는 기업들의 실적, 가파른 달러/엔 환율 진정, 중국 수출 및 물가 데이터 호조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내다봤다.
반드시 챙겨봐야 할 3가지 데이터로는 국제유가, 기준금리, 환율이 꼽혔다.
황세운 위원은 “중동전쟁이 현실화할 경우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이 경우 경기는 침체되면서 인플레이션은 강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도 배제할 수 없게 되고, 증시엔 치명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더 빠르고 더 큰 폭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시장의 압력이 커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동원 센터장은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데이터 의존적인 피벗(pivot, 금리 인하) 의사결정 구조는 이미 ‘R(Recession, 경기 침체)의 공포’를 키우는 리스크로 작용했다”면서 “‘빅컷(한 번에 0.5%포인트 금리 인하)’이나 ‘긴급 금리 인하’ 등이 당장 R의 공포를 키울 수 있단 부작용은 분명하지만, 중장기적으론 선제적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을 낮추고 증시를 떠받치는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