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경남 양산시 통도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 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큰 사찰에만 있어 스님들만 이용한다는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 앞마당까지 모든 여유 공간에 자가용이 빽빽하게 가득 찼다. 백중(百中) 기간 둘째 주 기도 일이 일요일과 겹쳐서 일까.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날(음력 4월 8일)이 최대 명절이지만 출가일(음력 2월 8일), 깨달음을 얻은 성도일(음력 12월 8일), 열반일(음력 2월 15일) 까지 4대 명절이라 한다. 조상의 영혼을 기리는 백중일(음력 7월 15일)을 더하면 5대 명절이다.
백중일은 술과 음식, 과일 등을 차려 놓고 망자의 혼을 위로했다고 해 ‘망혼일(亡魂日), 또는 거꾸로 매달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건진다는 의미의 ‘우란분절’이라고 한다. 목련존자(석가 제자)가 악도(惡道, 죽은 뒤에 가야하는 괴로움의 세계로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수라도)에서 어머니를 구한 데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백중에는 조상의 극락왕생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고 악도에 떨어져 신음하는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고 해탈을 기원한다. 이를 위해 절에선 음력 7월 15일까지 7주(49일) 동안 기도 주간을 갖고 있다.
통도사의 7월은 백일홍과 참나리, 능소화가 무더위 속에서도 화사함을 뽐내지만 3월 초에 찾았을 땐 매화가 지천에서 반겼다. 창건한 자장율사의 정신을 기려 이름 붙인 자장매(홍매화)와 오향매(백매화)는 영각(影閣, 큰스님 영정들을 모신곳)앞에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듯 했다.
통도사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袈裟)를 모신 불보(佛寶) 사찰이라고 해 삼보사찰 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팔만대장경판이 있는 해인사는 법보(法寶)사찰,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승보(僧寶)사찰이라 한다. 불(佛)·법(法)·승(僧), 세 사찰을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 하며 중요하게 여긴다.
총림(叢林)인 통도사는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며, 조계종 최고 어른 종정 스님이 계신 곳이다. 방문하던 날 가랑비에도 불구하고 양산 영축산 자락 그 넓은 통도사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였다.
불보사찰, 영축 총림 통도사
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 영축산에 삼국시대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자장율사는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봉안해 창건함으로써 당시부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됐고 대웅전 남쪽 금강계단에 봉안한 불사리탑은 통도사의 중심이 됐다.
이외에도 수많은 중요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세계 유산에 등재된 절은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7개 사찰이다.
통도사는 총림(叢林)이다.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총림’은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큰 사찰을 말한다.
우리나라엔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동화사, 범어사, 쌍계사 등 7대 총림이 있으며 그 수장을 방장(方丈)이라 한다. 승려들이 행자교육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으면 강원에서 4년 과정을 이수 후에 구족계(비구계)를 받고 선원이나 율원에서 수행생활을 하게 된다.
통도사가 있는 영축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설법하던 인도 영축산과 모양이 비숫해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인데 자장율사의 통도사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시절 종남산에서 수행 중 문수보살을 친견했다. 문수보살은 석가여래의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00구와, 염주, 경전 등을 전하면서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 기슭에 독해(毒害)를 품어 비바람을 일으키는 등 백성들을 괴롭히는 독룡(毒龍)이 있으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자장율사는 귀국해 연못의 아홉 마리 독룡들을 교화해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곡동(三谷洞)으로 떠나갔다. 오직 한 마리는 남아서 터를 지키겠다고 맹세해 남도록 허락했다. 독룡이 살던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그 안에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안치해 통도사를 창건했다. 연못 한 귀퉁이는 남겼는데, 지금의 금강계단(金剛戒壇) 옆 ‘구룡지’로, 마지막 한 마리 남은 용이 있는 곳이라 한다. 마르지 않는다는 조그만 연못(구룡지) 옆에 오래된 백일홍 한 그루가 운치를 더하고, 대웅전 한쪽 계단(階段)엔 용꼬리가 조각돼 용이 금강계단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으로 설화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신라 시대에는 모든 승려들이 통도사 금강계단에 와서 계를 받았고,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를 통도사를 비롯 오대산 중대사자암,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에 나눠 봉안해 이들을 5대 적멸보궁이라 했다.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가장 먼저 창건한 절로서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로서 신라 불교의 계율(戒律)의 근본 사찰이 됐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다는 것은 곧 부처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통도사는 중요한 곳으로 여겨졌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 통도사
한국 삼보 사찰 중 하나인 만큼, 70여동의 건물이 있는 대 사찰로, 국보 1건, 보물 27건 등 100여건 이상의 문화재를 소장한 한국 불교 문화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통도사는 오른쪽에 영축산이 위치하고 왼쪽에는 계곡이 바짝 붙어있어 앞뒤 부지의 폭이 좁고 중앙이 집중된 형태이다. 산과 계곡 사이의 이런 좁고 긴 부지 때문에 법당과 탑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전형적 배치방식을 적용할 수 없어 동서로 길게 확장된 특이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대웅전 및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향했는데 서쪽에서부터 가람의 중심이 되는 상로전(上爐殿)과 중로전(中爐殿), 하로전(下爐殿)으로 창건 당시부터 이렇게 건립됐다고 한다. 하로전은 일주문, 중로전은 천왕문, 상로전은 불이문을 둬 권역을 구분하고 있으며 세 문을 모두 통과하면 대웅전이 위치하고 금강계단 입구에 이를 수 있다.
통도사 경내에서 가장 서쪽(윗쪽)에 자리 잡은 상로전 권역은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 및 금강계단을 비롯해 응진전(應眞殿), 명부전(冥府殿), 삼성각(三聖閣) 등이 있다. 삼성각도 고려 말의 삼화상(三和尙)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의 영정을 봉안했다.
불보사찰의 칭호를 얻게 된 통도사의 중심이 되는 금강계단 불사리탑(佛舍利塔)은 2중의 넓은 방단(方壇)위에 석종(石鐘)의 부도를 안치했다. 사리탑 보존을 위해 한 달에 5회,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참배가 가능한데, 지난 6월 방문 시 참배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정사각형 목조건물인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 1645년에 중건했는데 4면에는 금강계단, 대웅전, 대방광전(大方廣殿), 적멸보궁(寂滅寶宮) 등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불상 대신 거대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이 조각됐고 천장에 새겨진 국화와 모란꽃의 문양이 아름답다.
통도사 경내 중간에 자리 잡은 중로전 권역은 관음전(觀音殿) 용화전(龍華殿) 대광명전(大光明殿), 장경각(藏經閣), 원통방(圓通房), 화엄전(華嚴殿) 등이 있다. 대광명전은 중로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로 화엄종의 상징인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보물로 지정됐다.
한국전쟁 초반엔 제31육군병원 분원이 설치돼 3000여 명의 부상병을 치료한 공적을 인정해 사찰 중 최초로 통도사가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됐다. 지정이 가능했던 기록이 보존됐던 용화전과 그 앞의 봉발탑(보물)은 미륵 세상을 갈구하는 듯 보인다.
통도사 경내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 잡은 하로전 권역은 영산전·극락전·약사전·만세루·영각·범종각 등이 있다. 석가모니 불상과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있는 북쪽(안쪽)의 영산전(靈山殿)을 중심 건물로 좌우, 그리고 남쪽 전면에 누각을 두어 전형적인 조선시대 배치 양식을 따랐다.
내·외벽의 벽화가 유명한 영산전은 건물양식이나 역사성으로 볼 때 대웅전 건물과 함께 가장 관심 받는 건물로서 보물로 지정됐다. 그 외 극락전 앞의 배례석(拜禮石), 삼층석탑 그리고 통도사에서 2㎞ 떨어진 곳에 있는 사지경계(四至境界)인 국장생석표 등은 고려시대 초기 대표적 석조물이고 수많은 탱화를 비롯해 유물들이 있다. 20여개 이상의 큰 산내 암자가 있는 대형 사찰인 만큼 볼거리도 많다.
통도사의 고승들, 그리고 종정(宗正)
‘통도문화예술의 거리’ 시가지 끝자락에 매표소를 겸한 웅장한 영축산문(靈鷲山門)이 여기서부터 통도사임을 알리고 있다. 이곳을 통과해 2018년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숲길 ‘무풍 한송로’ 를 여유를 갖고 걷다보면 계곡과 오랜 옛날 바위에 새긴 한문 글씨 등 특이한 분위기와 그에 어울리는 고즈넉함을 맛볼 수 있다.
수많은 고승을 배출한 사찰답게 승탑과 탑비가 숲을 이루고 있는 부도원과 함께 두 번째 산문인 영축총림이라 쓰인 총림문(叢林門)이 나온다. 총림문 바로 안쪽엔 최대 규모라는 웅장한 성보박물관이 있고 석장승 2기가 이를 지키듯이 서 있다. 이곳을 지나야 마침내 통도사 하로전이 시작되는 일주문을 마주할 수 있다.
‘영축산 통도사’라는 흥선대원군이 썼다는 현판이 붙은 일주문 좌우에는 ‘불지 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 새겨져 있어 대찰로서의 통도사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일주문 옆 냇가에 경봉스님이 세웠다는 ‘삼성반월교’ 가 멋스러움을 풍기고 있다. 난간이 없어 위험한 탓인지 통제돼 있다. 경봉 정석(1892~1982) 스님은 일제 강점기 만공, 한암, 용성스님과 교우하며 친일불교청산과 조선불교 재건운동을 전개했던 분이다.
통도사는 창건한 자장율사를 비롯해 수많은 고승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려 말 월송(月松)스님은 빈번한 왜구들의 침입으로 석가여래의 사리, 가사 등을 갖고 서울로 피신해 사리를 보호했고 임진왜란 때는 왜적에 의해 탈취됐던 사리와 영골을 포로로 잡혔던 백옥거사가 되찾아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
흔히 사명대사로 알려져 있는 의승장 유정(惟政)은 임진왜란으로 영남 지방이 왜구의 수중에 들자 통도사의 진신사리를 금강산에 있던 은사인 서산대사 휴정(休靜)에게 보내 보호했다. 이후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명을 받아 옛날 계단(戒壇)터를 수리하고 사리를 안치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환성지안(喚惺 志安, 1664~1729년)스님과, 독립 운동을 주도했던 구하 천보(1872~1965년) 스님도 통도사와 인연이 있다.
근래에 와서는 조계종 제 9대 종정(1994~1998년)을 지내며 조계종단개혁과정의 중심에 서 있었고, 통도사 초대 방장을 지내며 현재의 통도사 기초를 만들었던 월하 대종사(1915~2003년)가 있었다. 그의 상좌(제자) 성파 대종사(1939년~ 현재)는 현재 조계종 15대 종정(2022년~ 현재)으로 재임 중이다.
성파대종사는 서운암에 기거하면서 선농일치를 실현하고, 그림과 글씨 도예에 재능이 많아 도자기로 대장경을 만들고 옻칠염색, 불화 민화 작업을 하고 있다.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종정(宗正)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종단의 가장 큰 어른을 일컫는다.
통도사는 지역 내 영향력도 커서 여야 많은 정치인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통도사에서 2km 떨어진 곳에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후 거처하고 마련한 평산책방도 있다.
통도사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데 비로자나는 ‘진리의 빛을 두루 비춘다.’ 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통도사 설법당에는 수백 명이 몇 시간째 기도를 드리고 있다. 통도사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처럼 우리 정치에도 좋은 기운들이 전달되길 소망해본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