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이거 우물 아니야?”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한 농촌체험장. 한켠에 놓인 벽돌을 쌓아둔 듯한 직육면체 조형물이 있다. 측면의 수도꼭지에는 파란 고무호스가 연결돼 있다. 주변엔 고무 호스와 솔과 철수세미, 가루 세제 등이 어지럽다.
조선시대 유물 같은 이 곳, 정체는 다름 아닌 ‘공공음수대’. 시민들이 마셔야 할 물인데, 전혀 다른 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같은 공공음수대가 서울 시내 공원 등에 1057개나 있다. 일상 곳곳에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는데도 식수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돼 있는 셈이다.
그 대신 시민들이 마시는 물은 주로 ‘생수’, 주로 플라스틱에 담긴 병입수다. 생수가 판매되기 시작한 지 30년이지만 연간 56억개의 생수 플라스틱병이 버려진다. 쓰레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대안으로 공공음수대 이용이 활발해져야 한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달 3주 동안 서울 공공음수대 관리 현황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18일 공개했다. 여성환경연대는 5개 제로웨이스트샵 소속 35명의 시민들과 서울 강동·관악마포·용산중랑구 일대의 297개 공공음수대를 찾아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와 함께 음수대를 찾기 쉬운지, 표지판이나 지도 등에 음수대 위치 안내가 돼 있는지, 음수대 주변은 깨끗한지, 수질 검사가 주기적으로 이뤄졌는지 등 5개 항목을 점검했다.
운영과 수질 검사 현황은 대체로 잘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여성환경연대는 살펴본 297개 음수대 중 92.6%는 운영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수질이 관리되고 있는 음수대도 82.8%로 조사됐다.
그러나 공공음수대가 마실 수 있는, 마시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음수대 주변이 청결하다는 답변은 53.8%에 불과했다. 공공음수대가 주로 외부에 마련돼 있다 보니 낙엽이나 흙 등의 오염물이 묻어있어서다. 간혹 생활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특히 공공음수대가 물을 마시는 외의 용도로 사용되는 흔적도 다수 발견됐다. 서울 마포구 효창공원 내 있는 한 공공음수대에서는 한 시민이 발을 닦기도 했다. 이 음수대를 기록한 채소 씨는 “요즘 ‘맨발걷기’가 유행하다 보니 흙을 씻어내려는 시민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아예 음수대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두고 사용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음수대의 물을 마시는 모습도 드물게 확인됐다. 서울 강동구의 한 공공음수대에는 누구나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바가지가 마련돼 있었다. 월드컵공원과 한강공원 등이 위치한 서울 마포구에서도 운동이나 산책 중 물을 마시는 시민들이 종종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297개의 음수대를 살펴본 결과, 시민들 사이에 음수대 물을 마셔도 된다는 인식이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서울 마포구의 음수대를 관찰한 예람 씨는 “가끔 어린 아이들이 음수대 물을 마시려고 하면 보호자가 이를 제지하기도 했다”며 “의식적으로 음수대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설득하기는 역부족”이었다고 덧붙였다.
디자인을 개선해 이용 편의를 높여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서울 중랑구의 고마리 씨는 “수도꼭지가 위를 향하면 바로 물을 마시기 쉬울 것 같다며 ”음수대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라 통일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이주 씨도 “수압이 약해 물을 마시기 힘든 음수대가 있는가 하면, 물이 너무 세서 머리카락과 얼굴에 튀는 곳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여성환경연대는 음수대 자체를 모르는 시민들도 많은 만큼 홍보와 안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르다 활동가는 “음수대 대신 ‘먹는 물’ 등 쉬운 설명을 달고, ‘생수’, ‘물’ 등 간접 검색으로도 음수대 위치가 노출돼야 한다”며 “공원 내 표지판이나 네이버, 카카오 지도 애플리케이션 등에 음수대 위치를 나타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