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화 주장… “강달러, 美 기업 수출 어렵게 해”

전문가들, 달러 절하 시 인플레 재점화 우려…“모순 직면”

대세론 탄 트럼프-밴스, 강달러 마침표 찍을까[디브리핑]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J.D. 밴스 상원의원이 16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 오랜 기간 이어진 강달러 기조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약달러로 수출 경쟁력을 높인다는 달러 절하론자인데, 부통령 후보로 낙점된 J.D. 밴스 상원의원(오하이오주)도 강달러가 자국 제조업체에 해가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이들이 백악관에 입성하면 달러 가치를 떨어트릴 방법을 고심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워 강한 정책을 내놓으면서도 달러화 가치에 대해선 다른 입장을 보여 왔다. 달러 강세는 미국 제조업체들이 약세 통화를 사용하는 해외 구매자들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2017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달러가 너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에는 캐터필러, 보잉과 같은 미국 기업들이 경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면서 “누군가는 내가 매우 강한 달러에 흥분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시 대선에 도전하는 올해 4월에는 달러가 엔화 대비 급등하자 “달러 강세가 미국 기업들을 파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멍청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말로 들리겠지만 미국 제조업체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라고 말했다.

달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하면서 글로벌 기축통화로 자리잡았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의 약 60%를 달러로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강달러 정책을 유지해 왔다.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E. 루빈은 강달러에 대해 미국 기업의 해외 경쟁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달러 강세를 조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으며 재무부 장관들은 통화 가치가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중국과 같은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약화하기 위해 행동하면 미국은 그들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선택된 밴스 의원도 달러 가치에 대해 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NYT에 따르면 밴스 의원은 지난해 상원 청문회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질의응답 중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보조금이지만 미국 제조업체들에게는 세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달러 강세가 미국에서 합의된 신성불가침의 대상이란 것을 알지만 제가 미국 경제를 조사해 보면 한편으로는 대부분 쓸모없는 수입품을 대량 소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화(空洞化)한 산업 기반을 본다”면서 “기축통화의 지위가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단점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2024년 공화당 정강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트럼프와 밴스가 올해 당선될 경우 달러 약화를 시도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출범 시 재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달러 가치를 절하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폴리티코가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달러 약세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재무부가 외화를 사기 위해 달러를 팔거나 연준이 달러를 더 찍어내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NYT는 내다봤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모든 국제 상거래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달러 가치 하락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고한 수입품 관세 인상과 맞물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재점화할 공산이 크다.

마크 소벨 공식통화·금융기관포럼(OMFIF) 의장은 “달러 절하는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관세 인상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매우 확장적인 재정 정책은 수요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래드 세터 외교관계위원회(CFR) 연구원은 트럼프-밴스 팀이 경제 의제에서 ‘핵심 모순’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안한 감세안이 재정적자를 확대하고 금리를 올려 달러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율 관세는 다른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달러 대비 약화시키도록 부추길 수 있다.

세터 연구원은 “다른 국가들을 처벌하고, 관세로 때리고, 그들의 수출 가치를 떨어뜨리면 그 영향으로 그들의 통화가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은 달러를 절하하려는 움직임이 물가가 상승하면서 성장이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 나라의 정부가 자국 화폐의 가치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가 왜 그 나라의 화폐 가치에 관심을 갖겠냐”고 반문하면서 “달러를 절하하면서 관세를 올리는 것은 스스로 초래하는 공급 충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