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의 지정학적 갈등·中당국의 규제 심화 등 원인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10년 전 전자상거래 대기업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을 준비하던 당시, 세계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공모주를 인수했다. 2014년 당시 주식 거래자들은 알리바바의 시그니처인 오렌지색 후드티를 입은 채로 상장을 축하하며 환호했다. 당시 알리바바가 상장으로 조달했던 250억달러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뉴욕타임스(NYT)는 과거에는 활발했던 중국 기업의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최근 3년간 월스트리트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고 25일 보도했다.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관계 악화, 중국 당국의 단속 심화 등으로 중국 기업의 성장이 어려워지고 투자 유치 또한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올해 들어 중국 기업이 미국 상장에서 조달한 금액은 약 5억8000만달러(약 8042억8600만원)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인 지커(Zeekr)가 지난달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으로 조달한 금액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 기업의 미 증시 상장 문턱은 더 높아졌다. 중국계 패스트 패션 쉬인(Shein)은 지난해 11월 뉴욕 증시에 IPO를 신청했지만 미 의원들이 쉬인이 공급망에서 강제 노동을 사용하는 것과 미국 세법 면제 사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결국 퇴짜를 맞았다. 쉬인은 최근 미국 대신 런던 증시로 방향을 바꿨다.
일본의 기술 대기업 소프트뱅크와 미국의 사모펀드 워버그핀커스에서 중국에 투자했던 경험이 있는 미국 기반 투자자인 린다 유는 “오늘날 중국 기업이 상장할 시장을 선택하는 데에는 기본적인 사업 가치 외에도 지정학적 갈등 등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미국 증권거래소에 있는 중국 상장사의 대부분은 2018년~2021년 IPO를 한 기업들이다. 2021년 6월 중국 최대 차량 호출앱 디디추싱이 중국 정부의 승인 없이 44억달러(약 6조588억원) 규모의 미국 IPO를 추진했지만 결국 상장 폐지됐다. 이 사건 이후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상장은 크게 줄었다.
당시 디디추싱은 중국에서 우버보다 더 많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 당국은 기업공개 이틀만에 디디추싱에 신규 사용자 등록을 중단하고 사이버 보안 검토를 받도록 강요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중국 고객 데이터를 미국으로 유출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디디추싱은 상장폐지와 함께 중국 규제 당국에 의해 80억위안(약 1조5149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후 어떤 중국 기업도 해외 증권 거래소에 이렇게 세간의 이목을 끄는 상장을 시도하지 않게 됐다.
해외 뿐 아니라 중국 증시에서도 기업들의 상장은 녹록치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3기에 접어들며 기업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다.
올들어 중국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은 40여개에 그쳤다. 시장 자료 조사기관인 딜로직에 따르면 이 기업들이 지금까지 조달한 금액은 30억달러(약 4조1500억원)도 안된다.
지난 4월 중국 정부는 기업 IPO 기준을 강화했다. 앞으로 중국 기업이 자국 증시에서 IPO를 하기 위해선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더 면밀하고 철저한 감독을 거쳐야 한다.
규제 당국의 공개 기록에 따르면 올해 적어도 100개 기업이 베이징, 상하이, 선전 거래소에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중국의 벤처캐피털 투자는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앤드루 콜리어 오리엔트캐피털리서치 상무는 “원래도 중국의 증권 규제 당국은 기업들의 상장을 허용하는 데 있어 엄격했지만 지금은 더욱 엄격해졌다”며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상장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며,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