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그동안 세제로 씻어서 분리배출했는데...재활용이 안된다니 어이없네요"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1인가구 직장인 조모(29) 씨는 즉석밥을 상자 째로 사서 먹는다. 밥을 해먹는 일이 많지 않아서다. 밥을 해먹어도 상하거나 쌀을 사둬도 벌레가 꼬인다.
조씨뿐 아니다. 쌀 소비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즉석밥 판매량은 나날이 증가 추세다. 지난해에 즉석밥은 약 10억개 판매된 것으로 추산된다. 즉석밥이 담겨있던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도 10억개 버려졌다.
그런데 이 용기들, 재활용하려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장기간 보관하고 바로 데워야 하는 즉석밥 특성 상 플라스틱도 여러 재질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연간 10억개씩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면, 우선 번거롭더라도 즉석밥 용기는 용기끼리 모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즉석밥 용기의 재질은 플라스틱 중에서도 ‘기타(Other)’로 분류된다. 기타 재질이란 2개 이상의 플라스틱이 섞여있다는 의미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단일 재질끼리 모을수록 좋다.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잘게 부수고 녹여 다른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재생 원료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재질이 섞이지 않은 순도 높은 원료일수록 값이 올라간다. 즉, 애초 2개 이상 재질이 섞인 플라스틱은 좋은 재생 원료가 되기 어렵다.
기타 재질을 플라스틱 수거함에 넣더라도, 선별 과정에서 기타 재질 플라스틱은 골라내 일반쓰레기로 소각한다. 재활용 선별장 입장에서 기타 재질 플라스틱은 애물단지인 셈이다. 이에 기타 재질 플라스틱은 아예 일반쓰레기로 버리도록 권고된다.
즉석밥 용기의 경우 대부분 2개 이상의 플라스틱 재질이 섞여 있다. 상온에서 장기간 변질 없이 보관하고, 용기 채 데울 수 있게 설계됐다. 용기의 95% 가량은 폴리프로필렌(PP)으로 돼 있고, 가운데 산소를 차단하는 에틸렌비닐알코올(EVOH) 재질의 필름이 껴 있는 구조다.
즉석밥 용기가 플라스틱 배출 및 재활용 체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제조사들은 자체 수거를 하고 있다. 즉석밥 용기 자체는 복합플라스틱이지만, 즉석밥 용기끼리 모아 재활용하면 동일한 순도의 플라스틱이 된다.
즉석밥 시장 1위 햇반의 제조사 CJ제일제당의 경우 온·오프라인으로 즉석밥 용기 수거 체계를 마련했다. 햇반을 포함해 다른 제조사의 즉석밥 용기라도 20개 이상 모아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방문 수거를 한다. 전국에 수거 거점 185개소가 있다. 지역에 따라 주민센터, 청년센터, 학교, 편의점 등이다. 이중 82개소가 경북 포항에 집중돼 있다.
즉석밥 용기끼리 수거는 되고 있지만, 실제 재활용은 쉽지 않다. 우선 판매되는 즉석밥 대비 수거되는 용기가 극히 적다. 햇반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은 약 68%, 연간 판매량은 약 6억6000만개(2023년 기준)다. 수거된 용기는 약 30만개(2022년 기준) 수준이다. 판매량의 0.1%도 돌아오지 않는 셈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오프라인 수거 거점을 대형마트에 운영했으나 양이 많지 않아 현재는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업하고 있다”며 “실생활에서 햇반 용기 수거가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모은 즉석밥 용기들을 즉석밥 용기로 다시 만들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지금까지는 운송용 상자나 응원봉, 화분이나 정화조 등으로 재활용됐다. 즉석밥 용기로 다시 만들려면 재질 별로 분리하는 공정이 추가돼야 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즉석밥 용기는 반찬 등 이물이 많이 묻어 용기로 재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대신 용기 두께를 줄이거나 생산 과정에서 효율을 30% 높이는 방식으로 폐기물을 줄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