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부자증세’와 AI 개발 규제 등 불만
트럼프 캠프 기금 모음 행사 주최하기도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술 벤처 투자가들이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에 등을 돌리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실리콘밸리에서 데이비드 삭스, 마크 안드레센, 차마스 팔리하피티야와 같은 기술 벤처 투자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증세안과 암호화폐와 인공지능(AI) 개발 규제 등에 실망해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벤처 캐피털 투자자이자 팟케스트 진행자인 데이비드 삭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1년 1·6 미국 국회의사당 폭동 선동 당시 “트럼프에게 미래의 정치 후보가 될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삭스는 지난주 기술 컨퍼런스에서 이러한 입장을 바꾸며 “나는 트럼프보다 바이든과 더 큰 의견 차이가 있다”라며 “트럼프 선거 캠프에 기금 모금을 주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저명한 기술 투자자이자 억만장자인 벤처 자본가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도 과거에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삭스와 함께 트럼프 캠프의 기금 모금 행사를 공동 주최할 예정이라고 NYT는 전했다. 코슬라 벤처스의 케이스 라보이스도 공화당원을 의회에 선출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NYT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이러한 발언들이 트럼프 캠페인을 위한 공식적인 지원이나 개인 기부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막대한 자본을 보유해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전미 벤처캐피털협회(NVCA)를 이끌고 있는 바비 프랭클린 최고경영책임자(CEO)는 “내가 시작했을 때는 모든 사람이 세금과 이민 문제와 같은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며 “지금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이 같은 변화는 바이든에 대한 미국의 광범위한 실망을 반영한다고 프랭클린 NVCA CEO는 말했다. 그는 “테크 업체, 벤처캐피털, 실리콘밸리는 현 상황을 보고 (트럼프와 바이든)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 것도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며 “더 이상 민주당이 기술업계의 문제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며 공화당 또한 비즈니스 문제를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던 실리콘밸리에서의 이러한 우경화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고 NYT는 전했다. 벤처 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는 2007년 민주당 출신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을 영입했고, 그 후 10년 동안 에어비앤비, 구글, 우버, 애플 등 기술 회사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 구성원들을 적극 고용한 바 있다.
일부 벤처 투자자들은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대기업 간 합병을 차단하는 움직임에 좌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바이든의 증권거래위원회(SEC) 의장이 암호화폐 회사들에 적대적이었던 사실도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2년 이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자본이 대거 빠져나간 이후 주식 시장이 침체돼 투자자들이 가치 있는 투자에서 이득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스타트업 산업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이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대한 반발심도 심하다고 투자자들은 말했다. 개편안에는 소득 상위 0.01%에 최소 25%의 세율을 적용해 자산 증가분에 과세를 하고 주식 환매에 적용하는 세율도 1%에서 4%로 늘리는 방안이 포함됐다.
삭스는 지난주 기술 컨퍼런스에서 이러한 ‘부자 증세’가 창업자와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업계의 시스템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며 “실리콘밸리가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고민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안드레센 호로위츠(a16z)는 암호화폐 친화적인 국회의원들에 2200만달러를 기부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저명한 투자자들과 스타트업 창업자로 구성된 그룹이 AI 개발 단계부터 취약점을 찾아 안정성 테스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혁신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기술과 AI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털 회사인 투스크 벤처스의 브래들리 투스크 CEO는 민주당이 성공한 자본가들을 악마로 만들어 일부 기술 회사 경영자들을 더욱 소외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악인이라고 말하면, 결국 그 사람들은 적이 된다”며 “나는 벤처 캐피털에서 그것을 보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