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상풍력 산업 잠재력 상당한데

중국업체 저가 무기로 시장 적극 진입

기자재 공급에 시공 넘어 운영권 노려

국내 생태계 보호 위한 정부 조치 필요

“한국 바다에서 중국 기업만 돈 버나” 해상풍력도 ‘차이나 쇼크’ [비즈360]
중국 국기와 해상풍력 단지 [123rf]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해상풍력 시장을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터빈, 하부구조물, 케이블 등 기자재 공급으로 한국 시장에 상륙한 이들은 최근 들어 시공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우회투자를 통한 운영권 확보까지 넘보고 있다. 에너지업계는 물론 조선·플랜트·철강·전선업계가 해상풍력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해상풍력 산업의 육성 및 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 움직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2023년 말 기준 124.5㎿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상업 운전 중이다. 정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30년 해상풍력 전력 공급 목표가 14.3GW라는 점에서 목표치를 1%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국내 해상풍력의 공급 지체는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해상풍력 누적 설치 용량은 63.4GW다. 그해에만 8.8GW가 신규 설치됐다. 중국과 유럽이 80%의 점유율로 주도하고 있고 미국, 대만 등이 뒤이어 산업 규모를 키워가는 형국이다.

국내 해상풍력 시장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산업 잠재력만큼은 높이 평가 받는다. 풍력 터빈 제조는 물론 타워, 해상구조물, 특수선박, 케이블, 송·배전 계통 등 연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해상풍력 발전단지 구축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 여건상 해상풍력 발전 기회가 크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실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면 국내에서만 14GW 이상의 해상풍력 사업 기회가 생기게 된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 속에서 해상풍력 발전 시장이 커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국내 주요 기업은 해상풍력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에 따르면 2015년 13GW에 불과했던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은 2027년 154GW로 연평균 26.1% 성장할 전망이다. 2032년에는 477GW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바다에서 중국 기업만 돈 버나” 해상풍력도 ‘차이나 쇼크’ [비즈360]
해상풍력 단지 [123rf]

문제는 이미 글로벌 해상풍력 공급망을 상당 부분 장악한 중국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 국내 해상풍력 시장에도 진출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업체는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막 아래 내수 시장에서 실적을 쌓고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해외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육상·해상을 포함한 전 세계 풍력 공급망에서 중국산 제품 비중은 60% 이상으로 확대됐다.

실제 지난해 364.8㎿ 규모의 전남 영광 낙월 해상풍력 사업은 태국 비그림파워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명운사업개발이 따냈는데 비그림파워는 중국에너지엔지니어링공사(CEEC)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을 받아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설계·조달·시공(EPC)도 CEEC 합작사가 맡아 주요 기재자인 터빈은 중국 골드윈드가 인수한 독일 기업 벤시스에서, 해저케이블 중 외부망은 중국 형통광전에서 각각 공급받아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전북 고창 해상풍력 사업(76.2㎿)의 주기기 납품도 중국 밍양스마트에너지가 절반 이상의 지분을 가진 한중 합작사가 공급하기로 돼 있다. 이 합작사는 경남 사천에 해상풍력 터빈 생산공장도 건설할 예정이다.

중국 해저케이블 기업인 ZTT가 한국해양기술과의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해상풍력 발전기 설치선(WTIV)을 우리 해상에서 사용하거나 빌려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도 국내 기업이 사업을 펼칠 시장을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해상풍력 터빈, 하부구조물 등의 주기기 시공은 전체 공사비의 23~2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큰 사업 영역이다.

산업계는 이러한 중국 업체의 전방위적 시장 진입이 당장은 비용 감소 면에서 이득일지 몰라도 향후 국내 해상풍력 산업이 본격화될 때 이익을 중국이 독식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국내 업체가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없게 되면서 산업 경쟁력이 저하되고 결국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에 국내 해상풍력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현행 입찰 방식을 개선하고 기자재 국산화를 위해 기자재 사용에도 일부 제한을 두는 등 국내 해상풍력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바다에서 중국 기업만 돈 버나” 해상풍력도 ‘차이나 쇼크’ [비즈360]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재생에너지 업계 CEO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재생에너지 업계와의 간담회를 계기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를 발표한 점은 고무적이다.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이 뒷받침돼야 시장이 열리고 우리 기업도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상풍력 분야에선 해상풍력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입지 발굴, 주민협의·인허가 등을 지원하는 계획입지제도를 법제화하되 법 제정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집적화단지 제도를 활성화해 해상풍력 사업에 속도가 나도록 도울 방침이다.

정부는 해상풍력 인프라 구축 방안을 협의해 나가는 한편 오는 7월 향후 2년간 해상풍력 고정가격 입찰 물량, 시기, 평가 방식 등을 골자로 한 로드맵도 내놓기로 했다. 로드맵 발표와 함께 국내 생태계 보호·육성을 위한 입찰제도 개선 및 표준·인증 활용 등의 방안이 나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