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 속 ‘마이웨이’ EU, 반사이익 쏠쏠[디브리핑]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 [로이터]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미국과 중국이 무역 갈등을 벌이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이 양국 사이에서 다른 길을 모색하며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줄이는 동시에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는 늘리면서 무역수지 개선을 이뤘다.

21일(현지시간) 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U의 대중 무역 적자는 625억유로(약 92조원)로 2021년 2분기 이후 거의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8%, 전분기 대비 10% 줄어든 수치로, 정점이었던 2022년 3분기 1073억유로(약 159조원)에 비하면 42% 감소한 수준이다.

대중 무역 적자 감소의 절반 가량은 전기차를 포함한 기계 및 운송장비 부문의 무역수지 개선에 기인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EU의 중국 기계 및 운송장비 수입은 1분기에 25% 줄어 6분기 연속 감소한 반면, 대중 수출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멜라니 데보노 판테온거시경제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EU 수출 감소는 2021년 펜데믹에 따른 급증 기저효과다”며 지난 1월 거의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저가 제품 공세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방한 EU는 미국과의 무역에서도 선전했다.

EU의 1분기 대미 무역흑자는 436억유로(약 64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27% 늘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당 기간 대미 수출은 약 4% 증가한 반면, 수입은 5% 이상 감소했다.

미국이 많은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친환경 에너지 관련 제조업체에 보조금을 제공함으로써 유럽 수출 기업들이 탄력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들은 EU의 무역수지 개선이 유럽의 내수 위축과 팬데믹 이후 소비자 지출이 서비스에서 상품으로 전환된 것을 반영했다고 분석했다.

앤드류 케닝햄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변화의 상당 부분은 미국 내수의 강세와 EU 수요의 약세로 설명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의 대중 무역 장벽이 EU에 반사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샌더 토르두아르 유럽개혁센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유럽산 (제품) 수입에 개방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한 미국이 중국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EU에 이익이 될 것”이라며 “EU는 녹색 기술 제조업과 수출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금 감면 혜택이 차량 임대 업체가 구입하는 수입 전기차까지 확대된 것이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중국산 저가 제품 범람이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며 미국의 대중 관세 인상 정책에 EU도 동참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금융경영대학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면서 “우리가 전략적이고 단합된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양국(미국, 독일)과 전 세계 기업들의 생존 가능성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중국의 과잉 생산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EU가 중국의 친환경 기술 관련 수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미국의 기조를 따를 것을 촉구했다.

옐런 장관은 오는 24~25일 열리는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중국이 전기차, 친환경 에너지, 반도체 등 전략 분야에서 세계 시장 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해 제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유럽에서도 중국과의 무역은 최우선 순위의 정치적 의제로 떠올랐다.

EU의 중국 내 생산 전기차 수입은 2020년 16억달러(약 2조원)에서 2023년 115억달러(약 16조원)로 증가했다.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지난해 8%로 3년 새 4배 이상 상승했다.

이러한 가운데 EU는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에 대한 부당 보조금 지급 혐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EU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 반박하며 미국과 동일한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의 우려를 일부 공유하지만 우리의 접근 방식은 다르다”며 “미국은 중국산 제품에 포괄적 관세를 부과했다. 우리는 경쟁을 원하고, 함께 무역을 하고 싶지만 공정하고 규칙에 따른 무역을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보조금 조사에서 중국 전기차가 과도한 생산 보조금을 받았다는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에 대한 조치는 피해 수준에 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 “대응은 미국보다 더 차별화되고 표적화된 접근 방식”이라며 “우리는 그것이 시장을 폐쇄하거나 보호무역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디커플(탈동조화)’하는 것이 아니라 ‘디리스크(위험 제거)’하고 싶다”면서 “대응할 수 있는 도구상자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