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밸류업 두 자릿수 상승 ‘車·금융·지주사’ 밸류업 수혜주, 2차 밸류업에선 지지부진
“세제 지원 등 ‘알맹이’ 빠져” vs “중장기적 체질 개선 기대”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정부가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2차 밸류업 랠리’에 시동을 걸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와 달리 싸늘하다. 올 초 윤석열 대통령을 시작으로 금융 당국이 이어받아 밸류업에 대한 밑그림을 내놓았던 단계에서도 소위 ‘밸류업 수혜주’로 불리던 섹터·종목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던 데 비해,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 대한 공개 이후엔 오히려 관련주 주가가 하락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다.
두 자릿수 상승 ‘車·금융·지주사’ 밸류업 수혜주, 2차 밸류업에선 지지부진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거래소(KRX)가 도출한 28개 산업지수 중 다수의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밸류업 수혜주로 구성된 ‘KRX 자동차’, ‘KRX 은행’, ‘KRX 증권’, ‘KRX보험’ 지수는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이하 2차 밸류업)’가 개최된 전날 각각 0.28%, 2.51%, 2.10%, 2.84% 하락 마감했다.
전날 하루 외국인(626억원), 기관(1571억원) 투자자의 매도세가 이어진 것도 2차 밸류업에 대한 실망 매물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2월 있었던 ‘기업 밸류업 1차 세미나(이하 1차 밸류업)’ 이전 한 달간 밸류업 수혜주들의 주가 흐름과 2차 밸류업 이전을 비교해 본다면 금융당국의 주가 부양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평가가 냉정하다는 점이 확연히 나타난다.
1차 밸류업 이전 1개월간 ‘KRX 자동차’, ‘KRX 은행’, ‘KRX 증권’, ‘KRX보험’ 지수는 각각 17.27%, 12.02%, 15.08%, 21.20%씩 오르며 급등세를 보였다.
반면, 2차 밸류업 이전 1개월간은 ‘KRX 자동차’ 지수가 7.07% 상승하며 상대적으로 선방했지만, ‘KRX 은행’ 지수는 1.31% 상승하며 오름폭이 확연히 축소됐다. 심지어 ‘KRX 증권’, ‘KRX 보험’ 지수는 각각 -1.07%, -2.49%란 등락률을 기록하며 뒷걸음질 쳤다.
종목별 등락률을 살펴보면 2차 밸류업 시기 수혜주들의 부진이 더 두드러진다.
1차 밸류업 당시 각각 27.60%, 21.40% 상승했던 현대차, 기아는 2차 밸류업 시기에도 ‘피크아웃(정점 후 하락세)’ 우려를 씻어내는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 덕분에 13.18%, 14.23% 오르며 선전했다. 하지만,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1차 밸류업 당시 각각 16.17%, 23.52%나 올랐던 은행주의 경우 2차 밸류업 시기엔 4.93%, 0.88%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보험·증권, 지주사주의 등락률은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차 밸류업 당시 44.51%나 주가가 급등했던 삼성생명은 이번엔 8.72% 하락했고, 메리츠금융지주도 1차 밸류업 당시 35.24%의 상승률이 무색하게 2차 밸류업 시기엔 2.96% 하락했다. 삼성화재(1차 24.48%→2차 -2.90%), 삼성물산(1차 26.60%→2차 -5.74%), LG(1차 27.41%→2차 -9.01%), SK(1차 18.73%→2차 -8.99%) 등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1차 밸류업 시기를 통해 급등했던 주가에 대한 조정세가 덜했던 가운데 금융당국이 내놓았던 밸류업 가이드라인 등이 추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기엔 부족했던 것”이라며 “2차 밸류업 직전 발생한 중동발(發) 지정학 리스크,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따른 금리 인하 기대 하락, 유가 급등 등 매크로(거시경제) 악재로 위험 자산에 대한 투심이 꺾였던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세제 지원 등 ‘알맹이’ 빠져” vs “중장기적 체질 개선 기대”
증권가에선 구체적인 ‘세제 지원’ 방안 등 시장이 요구하고 있는 ‘알맹이’가 빠진 것에 대한 실망감이 곧장 주가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이를 따라 공시하는 상장사를 많이 끌어들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센티브가 적절한 세제지원이란 목소리가 초기부터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발표에서도 세제지원을 할 것이란 선언적 계획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시장의 기대가 반감됐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전날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면서도 지난달 21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에서 기자들과 만나 언급한 ▷법인세 부담 완화 ▷배당 확대 기업 주주의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 등에 대한 구체적 지원방안을 세부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문제는 여전히 시장의 기대와 밸류업 진행 과정 간의 괴리가 크다는 점”이라고 지적했고, 김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총선 이후 (압승으로 절대 다수당이 된) 야당의 반대로 밸류업 세제 인센티브,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공약 등 정책 동력의 약화 우려가 부각됐다”고 짚었다. 최근 야당은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의 기본 취지에 대해선 공감한다면서도 각종 세제 개편 방향이 ‘부자감세’로 이어져선 안된다며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가 직접 나서 “진정성을 강요할 수 없다"며 밸류업에 대한 기업 참여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나선 데에도 실효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지속되는 것도 문제다.
일각에선 기업 구조는 물론 금융투자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장기전’으로 밸류업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전날 세미나 축사를 통해 “가이드라인은 밸류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설태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업 분석에 있어 중장기 가이던스를 이번 가이드라인이 제시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기업의 존재 의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주주환원과 재무적 특성 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도 의미 있는 지점이다. 오는 9월에 발표 예정인 밸류업 지수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출시 등이 미칠 장기적 수급 기대감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
밸류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와 실망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증시 변동성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 밸류업을 투자자들은 매도 재료로 인식했지만, 근본적인 투자자들의 의구심은 기업가치 제고에 인색했던 과거 기업 행태에 있는 만큼 밸류업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 싶어 한다”면서 “자동차, 은행 중심의 주도주 구도는 쉽게 변하지 않을 전망이며, 밸류업 관련주의 중장기 전망은 밝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경민 연구원도 “한국 증시의 체질 개선이란 측면에서 접근은 긍정적”이라며 “조만간 가이드라인이 확정되고, 이를 기반으로 중장기적인 체질 변화를 모색한다면 코스피 밸류에이션 정상화도 가능하리라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