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중국이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침체) 우려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과잉생산을 통한 수출 의존 경제를 탈피하고 가계 소비를 촉진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1일(현지시간) 전기차(EV)·태양광·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면서 서방 국가들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과의 무역 및 외교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전했다. 민간 소비를 늘려야 견조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충고에도 중국 정부는 적극적인 소비 부양을 하지 않는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지난 3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발표한 연례 업무 보고서는 소비 장려보다는 ‘신품질 생산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제시한 신품질 생산력은 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 혁신을 꾀하는 전략이다.
당시 보고서에는 ‘소비’라는 용어는 총 11번밖에 언급되지 않았으나, ‘투자’, ‘제조’ 및 ‘산업화’라는 단어는 총 69번 등장했다.
중국은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 확대 대신 전기차, 친환경 에너지산업 및 AI와 같은 첨단 제조업에 보조금을 확대해 투자를 늘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중국은 유럽연합(EU)과의 무역에서 약4000억유로(약 590조원)의 흑자를 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FT는 “유럽에선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거액의 보조금을 지원해 의도적으로 가격을 억제한다는 불만이 있다”고 전했다.
중국 과잉생산의 이면에는 가계의 높은 저축률이 있다. 중국의 가계소득 중 상당 부분은 저축된다. 지난해 중국 가계저축률은 개인 가처분소득의 32%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저축하는 이유는 부동산 침체 속에 수익성 높은 투자 옵션이 부족하고 복지 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중국 은행들은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낮은 금리로 기업들에 대출할 수 있다. 기업들은 이 돈으로 설비 등에 대규모로 투자한다. 그 결과, 자국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많은 제품이 만들어져 해외로 수출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지난달 중국을 방문하며 “중국은 전세계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세계 수요의 10분의 1만 담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보다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가 강조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이념적·지정학적 원인도 있다. FT는 “시진핑은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에 대해 더 큰 통제력과 영향을 끼칠수록, 특히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더욱 안정감을 느낀다”며 “시진핑 체제 하에서는 경제 성장보단 국가 안보가 더 우선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더해 미중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제조업 자립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류지친 중국 런민대 충양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불안한 중동 정세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은 견고한 제조 능력과 풍부한 재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마이클 패티스는 “소비 확대는 또한 경제에서 제조업이나 투자의 역할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며 “소비를 진작 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가 그동안 해왔던 인프라 투자, 값싼 노동력 제공, 보조금 제공 등을 멈춰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