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동화 속 공주들은 대체로 계모가 나타나거나 용이나 마녀에게 납치되거나, 혹은 계모가 사주한 사람에게 납치된 후 숲 속에 버려지거나 제물로 바쳐지면서 역경이 시작된다. 보통 동화들이 수백~수천년 간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들의 총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에세이스트 조이 박은 신간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에서 “인간은 창작할 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며 “기존의 이미지를 가져와 새롭게 구성하고 조직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옛 이야기라 요즘 감성에 맞지 않은 동화를 아이들에게 계속 읽어줘야 할까. 저자는 “동화는 옛 이야기이면서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이야기”라고 단언한다. 오랜 세월 사랑 받아온 동화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내면에 새겨진 길을 찾아 성장할 수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 방식 그대로가 아닌,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동화 속 공주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동화의 시작이 가부장 중심의 사회에서 비롯되다 보니 공주로 대변되는 여성 캐릭터들은 늘 수동적이었다. 남성 주인공들이 모험을 떠나고 역경을 이겨내 영웅이 되는 동안 여성 인물들은 남성이 돌아올 고향에서 잠자코 기다려야 했다. 공주와 같이 여성이 주인공인 동화에서도 그녀를 구해줄 왕자나 청년이 와야 계모나 마녀, 용으로 인한 고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실제로 백설공주는 계모를 피해 숲으로 도망가지만 일곱 난쟁이에 의지해 살다가 권력이 있는 왕자에게 양도된다. 라푼젤은 좀도둑 플린이 와서야 높은 탑에서 내려올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마법에 걸린 공주님’에서도 착한 청년 한스가 베일에 가려진 셋 중 공주를 고르라는 노파의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야 공주는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동화를 전통방식으로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웅의 돌아가야 할 고향에서 기다리는 여성 캐릭터는 치유와 회복의 의미로, 라푼젤과 눈이 먼 플린의 결혼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어떻게 온전히 통합을 이루는지 알려주는 사례라고 해석한다. ‘마법에 걸린 공주님’에선 베일에 싸인 세 존재는 사실 공주의 세 가지 측면이고, 한스가 선택해 데려간 공주는 가부장 사회가 그녀에게 허락한 순종적이고 여성적인 면이라는 것이다. 결국 베일 속 용도 공주고, 한스가 데려간 미모의 여인도 공주라는 얘기다.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에는 인간이 수천 년간 쌓아온 상징과 이미저리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옛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앞으로 만들어낼 새로운 이야기와 콘텐츠에 깔아둘 켜를 쌓기 위해서. 수천 년 넘게 공유해온 집단 무의식의 흐름을 저어가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숲은 깊고 아름다운데/조이스 박 지음/J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