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관계자들 K-함정 ‘투톱’ HD현중·한화오션 잇달아 찾아
해양강국 미국·대항해시대 주역 유럽과 경쟁…‘팀십’이 해답
“정부와 방산기업 간 정보 교류·‘팀십’ 운영 더욱 활성화돼야”
[헤럴드경제(울산)=신대원 기자] “페루 해군이 역내 함정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최첨단 선박 건조 등 많은 도움을 기대합니다”
지난 4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열린 3000t급 잠수함 ‘신채호함’ 인도·인수식에 참석한 파울 두클로스 주한 페루대사는 “특별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돼 매우 영광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채호함 인수식, 9개국 군·정부 인사 참석=파울 두클로스 대사는 “여러모로 감명 받았고 직접 함정을 둘러볼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 됐다”며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지난주 HD현대가 페루 시마조선소 해군 함정 건조 프로젝트의 전략적 파트너로 선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HD현중이 최근 페루 국영 시마조선소로부터 3400t급 호위함 1척과 2200t급 원해경비함(OPV) 1척, 1500t급 상륙함 2척 등 총 4척의 함정 현지 건조 공동생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HD현대가 설계와 기자재 공급·기술 지원, 그리고 시마조선소가 최종 건조를 담당하는 형태로 총 규모는 4억6290만 달러(약 6220억원)에 달한다.
페루는 해군 현대화 구상에 따라 향후 호위함 5척과 OPV 4척, 상륙함 2척 등 총 11척의 함정을 추가 발주할 계획이다.
HD현대가 페루와 꾸준히 전략적 파트너 협력을 이어간다면 추가 수주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날 인수식에는 파울 두클로스 대사뿐 아니라 마이클 맥도날드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과 마이클 제이콥슨 호주 잠수함사령부 국장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 필리핀, 폴란드,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 9개국 20여명의 해외 군과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해외 군과 정부 관계자들이 진수식도 아닌 인수식에 대거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방산’의 영역이 ‘K-함정’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 실례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이튿날에는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으로 이동해 장보고-Ⅲ 배치-Ⅱ 잠수함 건조 현장과 한국 해군이 운용중인 1200t급 장보고-Ⅰ, 1800t급 장보고-Ⅱ의 창정비와 성능개량 작업 현장을 둘러봤다.
놀란 바크하우스 미 영사는 이 자리에서 “한화오션의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운영(MRO)사업에 대한 참여 의지와 보유 역량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외 군과 정부 관계자들이 같은 시점에 국내 함정 방산업체 ‘투톱’을 모두 찾았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조선업 세계 1위 韓 함정 수출 잠재력 커=한국은 세계 1위의 조선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강호인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함정 분야에서는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K-방산’이 세계 4대 방산 강국을 목표로 하면서 ‘K-함정’도 본격적인 항해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함정 수출은 한국에 있어 산업적인 측면뿐 아니라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동남아와 중남미, 중동, 호주까지 수출되는 한국 함정이 늘어난다는 것은 한반도 유사시 함정 분야의 탑재장비와 부품 등 신속한 서플라이 체인이 구축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더욱이 해양에서의 위협·분쟁 증대와 세계적인 노후함정 교체와 현대화 흐름, 수명주기 비용 절감형 소요 증대, 그리고 조선산업 기반 구축 소요 등에 따라 글로벌 함정 방산시장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대한조선학회 미래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함정시장 규모는 2020년 340억 달러에서 연평균 2.7% 성장을 통해 오는 2030년에는 44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호위함은 84억 달러에서 134억 달러, 구축함은 57억 달러에서 76억 달러, 그리고 경전투함 56억 달러에서 74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수출 가능한 세계 함정시장 규모가 오는 2031년까지 총 59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함형별로는 전투함을 자체 건조하는 선진국의 경우 군수지원함과 지원함, 그리고 동남아와 중동, 남미의 경우에는 호위함과 OPV, 잠수함, 다목적함 등 수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산 함정은 그동안 OPV와 군수지원함, 호위함, 초계함, 잠수함 등 40여 척의 수주 기록을 세웠다.
HD현대가 절반에 가까운 18척을 수주해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뒤를 잇는다.
▶HD현대, 국방부·방사청 등과 ‘팀십’ 페루 성과 거둬=현재 국내 함정 방산업체는 HD현대와 한화오션, HJ중공업, SK오션플랜트, 강남조선사 등 총 5개사다.
이 가운데 호위함급 이상 수상함과 잠수함을 연구개발한 실적과 역량을 갖춘 곳은 HD현대와 한화오션 정도다.
수출은 필리핀처럼 국내 건조 후 인도하거나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호위함과 같이 선도함을 국내 건조하되 양산함은 현지 건조하는 식으로 이뤄져 왔다.
전자의 경우 확실한 성능 보장과 적기 납품, 안정적 사업관리 등이 장점으로 꼽히지만 국내 생산 인프라에 과부하가 걸리 우려가 있다.
또 후자의 경우에는 함정연구 개발에 대한 성공 보장과 상호 ‘윈윈모델’이라는 점 등이 장점이지만 현지 건조 시 인력과 인프라 운영 등에서 제약이 있을 수 있다.
최근 HD현대와 페루는 HD현대의 연구개발과 기술지원 아래 공동으로 현지 건조하는 형태를 추진중이다.
이런 형태는 현지 건조인 만큼 국내 생산 부하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등의 장점이 있지만 현지 경험 부족과 인프라 낙후라는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
‘K-함정’이 순항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수반되고 민감한 안보·보안과 직결되는 모든 방산이 그렇듯 민관군의 ‘팀십’(Team Ship)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HD현대의 페루 함정 수주 교훈을 곱씹어볼만하다.
HD현대는 스페인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대항해시대’를 주름잡은 쟁쟁한 유럽 국가들과 경쟁을 펼쳤는데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과 ‘팀십’을 이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방산기업 간 방산정보 교류와 팀십의 운영이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며 “함정 수출 기술보호 가이드라인의 구체화와 규제 완화를 비롯한 현지 건조 및 기술 이전 공간을 확대하고 산업협력과 기술지원, 금융지원 등을 보다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