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조 두산에너빌리티 수석 인터뷰
수주 입찰 결과 나오기까지 최대 1년
경쟁사보다 앞서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
계약 이행 과정서 발주처와 이견 생기기도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변호사 자격증 따”
〈난 누구, 여긴 어디〉 일하는 곳은 달라도 누구나 겪어봤고 들어봤던 당신과 동료들의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기업인,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다룹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만약 수주전에서 지게 된다면 두산에너빌리티뿐만 아니라 협업하고 있는 중견·중소기업들도 큰 영향을 받는 만큼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수주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연간 수주 목표액 달성’ 여부에 목숨을 건다. 수주 성과에 따라 입찰에 뛰어든 기업은 물론 협력사들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할수록 기업은 대외적 리스크에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된다. 수주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수주전에 뛰어들 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명조 두산에너빌리티 플랜트 EPC(설계·조달·시공) 계약관리팀 수석은 지난 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두산타워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수주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우수한 성능을 갖춘 설비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빠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플랜트 EPC 계약관리팀은 발전소 EPC 수주 작업 과정에 발생하는 계약 문제 등을 해결하는 부서다.
정부 혹은 민간 발전사가 발주한 후 계약이 체결될 때까지 걸리는 기간은 최대 1년이다. 1년 동안 기업들은 경쟁사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이른바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다. 이 수석은 “수주전에서 보안이 상당히 중요한 만큼 경쟁사 정보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다”며 “경쟁사가 과거 비슷한 수주전에서 어떤 가격을 제시했는지 우선 조사한다”고 말했다.
발품을 파는 건 기본이다. 이 수석은 “설계 초안을 만들 때 금액을 산정해야 한다”며 “경쟁력 있는 가격을 내놓기 위해 부품 구매 부서가 신뢰성이 높으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부품을 제공할 수 있는 업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해외 발주처들은 계약 조건에 ‘현지 업체와 협력을 해야 한다’고 명시할 때가 있다”며 “현지 협력사를 찾기 위해 수십번 미팅을 진행하면서 후보 업체들의 장비 보유 개수, 인력 현황 등을 꼼꼼히 조사한다”고 덧붙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수주를 따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계약을 본격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주처와 수주 기업 간 신경전이 발생할 수 있다. 건설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의견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수석은 “100여쪽에 달하는 EPC 계약서도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만큼 문제가 발생했을 시 해결 방법을 놓고 발주처와 기업 간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만 문제가 있지 않는데도 동료들이 협상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회사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받는다면 그 타격은 협력사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회사가 받을 수 있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수석은 지난해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법적 지식을 활용해 발주처와의 협상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는 로스쿨에 직접 다녀야 하는 만큼, 온라인을 통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미국의 ‘4년제 온라인 로스쿨’ 제도를 활용했다.
그는 “회사에도 법무팀이 있지만 변호사들은 EPC에서 다루는 기술 관련 정보가 부족하다”며 “법무팀을 거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시 시간이 절약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주 작업 과정에서 한 발이라도 앞서가려는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두산에너빌리티는 최근 우수한 실적을 달성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난해 수주액은 8조8860억원으로 전년(7조4788억원) 대비 18.8% 증가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향후 연간 수주액 10조원을 넘어 2028년 12조9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수석은 “두산이 최전선에서 역할을 못 하면 협력사들도 영향을 받는 만큼 항상 책임감을 느끼고 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