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車) 아닌 보행자로 법에서 규정
음주운전, 뺑소니 모두 해당 안돼
물건 파손시에는 형사처벌 아예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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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아파트 단지 내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전동휠체어 탄 할아버지가 옆 방향에서 퍽 박고선 오히려 잘 보고 다니라고 적반하장으로 화내고 간다.”
“지하철을 타는데 뒤에서 100㎏이 넘는 전동휠체어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넘어졌다. 앉아있던 승객들이 일으켜 세워줬다.”
6일 경찰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장애인뿐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이 타는 전동휠체어 이용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조금이 지급된 전동휠체어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총 1만1979대에 달한다. 한 대 당 지급된 보조금은 약 189만원으로 보조금 없이 구매한 전동휠체어까지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수가 운용중일 것으로 추산된다. 통계청이 2020년까지 집계한 전동휠체어(장애인) 수는 13만3193대에 이른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는 인도로 다니는 탓에 ‘보행자’와 부딪히는 인적피해 사례는 물론, 아파트 단지 출입구 차단봉에 부딪혀 파손시키는 등 물적피해 사례까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보행안전법상 ‘보행보조용 의자차’인 전동휠체어는 보행자로 분류된다. 때문에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이 보행자를 치고 자리를 이탈할 경우 뺑소니가 아닌 과실치상으로 입건된다. 술을 마시고 전동휠체어로 몰아도 ‘차(車)’가 아니기 때문에 음주운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100㎏이 넘는 무게의 전동휠체어와 부딪치는 것은 일반 보행자가 가할 수 있는 충격보다 훨씬 더 크지만 이런 점 역시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실제로 발목을 강타해 전치 9주의 상해를 입혀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게 된 전동휠체어 이용자에게 검찰은 “주의의무가 더 크다”며 과실치상 최고형인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같은 보행자로서 추가적인 보호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사례가 있다.
그나마 인적 피해 사고는 형사처벌의 영역에라도 놓이지만 물적 피해 사고는 경찰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서울시내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전동휠체어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차를 긁었다거나 기물을 파손시켰다는 신고를 받아 나가는 사례가 체감상 잦아졌다”며 “하지만 물피는 경찰 영역이 아니라서 현장에서 양측 이야기를 듣고 중재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교통사고 수사를 담당하는 한 시도청 소속 경찰관도 “자동차가 일으킨 손괴는 처벌을 원칙으로 하되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하면 면책하지만 보행자의 과실손괴는 처벌 조항 자체가 없다”며 “손괴의 고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가 민사상 손해배상을 거는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민사소송을 걸어서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고, 만약 피고가 배상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면 강제집행을 해야해 피해회복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최근에는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노인·장애인 등 취약계층임을 고려해 보험을 대신 가입해주는 지원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해당 보험은 전동휠체어 운행 중 타인에게 물적, 인적 피해를 입히면 사고당 최대 5000만원까지 보상한다. 자기 부담금 3만원만 납부하면 대인, 대물배상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가족을 둔 A씨는 “다른 보행자들 입장에서 전동휠체어가 위험하게 느껴질 수 있어서 항상 조심해서 운행하라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며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중한 이동수단인데 인식이 나빠지면 우리만 손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