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집단 내에서도 복잡한 이해관계

각자의 셈법 달라…누가 대표성 가지나

의사들 이해관계 ‘복마전’… 협상 주체 구성 ‘난망’[취재메타]
서울 대형 종합병원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소속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 중단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전공의 당직실이 텅 비어 있다. 임세준 기자

편집자주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ά)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의사들의 ‘집단 행동’ 양상이 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복귀 데드라인(2월29일)’이 지남에 따라 사직 전공의 등에 대한 처벌에 착수할 태세다. 의료계에선 ‘현장복귀’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정부의 자세 전환’을 요구하는 등 대화와 타협에 양측이 나서야 한다는 중재 제안 목소리들도 나온다. 다만 의사 직역 내에서도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전공의, 교수, 대학 총장 등의 입장이 제각각이어서 제대로 협상이 진행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단체는 의협이다. 의협은 정부와 의대 정원 증원 등 필수의료 패키지를 두고 강대강 대치를 이끌어 왔으며 의료법 제28조에 근거해 모든 의사 면허가 있는 인사들이 자동으로 가입되는 법정 단체다. 지난해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도 정부와 함께 논의했다. 하지만 개원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까닭에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봉직의와 전공의, 의대생 등 다양한 층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8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의협이 의사들의 대표성을 가지기 좀 어렵다”며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 구성원을 의료계에서 제안해달라고 계속 요청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 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한)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며 반발했다.

의사들 이해관계 ‘복마전’… 협상 주체 구성 ‘난망’[취재메타]
전공의 집단이탈 열흘째, 정부가 제안한 복귀 시한 마지막 날인 29일 대구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

이에 비해 전공의들의 목소리는 결이 다르다. 전공의들의 모임인 ‘대한전공의협의’의 전임 회장들은 지난달 29일 ‘전공의와 정부에게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성명서에서 노조설립을 비롯한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들 회장단은 ‘상기 문건의 내용은 대한전공의협의회 역대 회장들의 의견이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문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확실히 한다’고 밝혔다.

현직 회장인 박단 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도 전공의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추후 의협 입장이 어떻든지 따라가지 않겠다. 의협은 개원의 중심으로 2020년에도 참여율이 한 자릿수였다”며 “전공의 문제는 전공의들끼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공의들이 의협을 바라보는 태도의 이면에는 2020년 의료파업 당시의 실망이 남아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당시 최대집 당시 의협회장은 전공의와 의대생을 배제한 채 ‘9·4 의정합의’를 도출해 반발을 샀다. 지금 전공의들이 당시 정부 정책에 반발해 국가시험 응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이다. 의협 또한 화요일 오후 2시 정례 브리핑 때마다 ‘전공의’에 대한 입장이 나오면 “본인들에게 직접 들으라”는 등 답을 회피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사들 이해관계 ‘복마전’… 협상 주체 구성 ‘난망’[취재메타]
정진행 서울대의대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공의들과 긴급 회동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의과 대학 교수들이 중재에 나섰으나 이마저도 무산 위기다. 전임의들이 병원을 떠나고 임용을 포기하는 신규 인턴도 속출하면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 각 의대 교수협의회 등 스승들이 중재자로 나섰다. 실제로 정진행 서울대 의대 교수가 서울대 의대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지난달 23일 보건복지부 차관과 회동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후 돌연 위원장 자리에서 사퇴하면서 구심점을 잃었다.

전국 40개 의대 학장들이 모여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350명으로 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지난달 27일 정기총회에서 적정 의대 증원 규모를 350명으로 하자고 했다. 신찬수 의대협회 이사장은 회의 뒤 “학장님들은 2025학년도 입시에서 수용할 수 있는 증원 규모는 350명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날 정부는 ‘의대 정원은 정부가 정하는 것’이라며 ‘2000명 증원’ 입장을 재확인했다.

의대 교수들에 따라 각 대학별 입장도 제작각이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현재 의료대란의 피해는 모두 중증·난치성 환자에 돌아가고 내달이 되면 의료대란은 재앙으로 바뀐다”면서 “의대 정원 증원을 찬성하는 비율이 55%로 반대보다 더 높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고려대 의대 교수의회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결정으로 야기된 의료계의 혼란 속에서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의회는 참담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전공의 한 사람에게라도 실질적인 위해가 가해지는 경우,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의회는 좌시하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대학 내에서도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들의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한 입장 차도 크다. 대체로 지방 소재 대학들은 의대 증원 필요 규모를 많이 써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정부가 ‘지역인재 전형’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과 무관치 않다. 교육부는 오는 3월 4일까지 각 대학들로부터 의대 증원 규모를 신청받겠다고 밝혀 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