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으로 환자 피해 인과관계 구체적 입증시 민사상 손해배상 가능”

의료계 업무개시명령 헌재 위헌 결정 사례 역시 無

의료계 집단사직에 ‘정부 강공’…법대로 하면 누가 이길까[취재메타]
정부가 보건의료재난 위기경보를 최상위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한 2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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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공백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역시 물러서지 않고 강공 모드를 이어가는 배경에는 법적으로 손해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 자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환자들로부터 파업 의료진에 대한 손배소가 무더기로 제기될 가능성이 상당할 뿐더러 정부의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위헌 판단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과거 법원은 의료파업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후유증이 생긴 환자와 가족에게 병원 측이 수억 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구지법 민사11부(당시 이영화 부장)는 2005년 8월 의료파업으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후유증이 생긴 박모군과 그 가족이 경북 포항성모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병원은 5억5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박군은 2000년 10월 갑작스럽게 구토를 하며 병원 응급실을 찾았으나 의사가 없어 근처인 경북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박군은 장이 꼬이고 혈액순환이 안 되는 장중첩증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가 늦어져 언어장애, 지적장애 등 후유장애를 얻게 됐다. 결국 박군과 가족은 이듬해 10월 먼저 찾아갔던 경북 포항성모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 재판부는 “병원 측은 박군이 병원에 왔을 당시 구체적인 검사를 통해 응급치료를 해야 했는데도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박군을 2시간 정도 거리인 경북대병원으로 옮기도록 해 적절한 처치 또는 수술시기를 놓치게 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2007년 항소심에서도 원고일부승소로 확정됐다.

당시 박군과 가족 측을 대리한 홍영균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파업으로 인해 어떤 부분에서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침해 당했는지 인과관계를 찾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다”며 “당시 사건은 환자가 장중첩증 증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병원 응급실에 들어갔으나 파업으로 인해 의료진이 한 명만 있었던 상황이었고, 응급 전원 과정에서도 의료진이 동행하지 못해 시간이 지체된 부분 등을 구체적 피해로 입증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파업에 따라 의사들이 해야 하는 데 하지 못한 업무상 과실 부분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과 그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주 의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의 피해와 인과관계가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근 병원에 전원 조치도 여의치 않은 현 상황에선 수술 지연 등으로 환자에게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병원이나 의료진에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크다”고 전망했다.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위헌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정부에 유리한 측면이다. 현재까지 의료계 업무개시명령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직접적 사례는 없고, 2021년 관련 사안에서 각하 결정한 사건이 유일하다.

서울에서 내과 전공의로 근무하던 A씨는 2020년 8월 보건복지부와 당시 여당이 추진하기로 협의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원격의료 허용 등 보건의료 정책에 반발해 대한의사협회가 실시한 전국의사총파업에 동참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부가 전공의 집단행동에 업무개시명령을 하겠다는 등의 계획을 발표하자, A씨는 “다른 의료인들과 결사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의사를 표시할 수 없게 돼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냈다. 특히 A씨는 당시 의료법 제59조 제2항과 제3항에서 ‘의료인에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규정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헌재는 “의료법 제59조 중 ‘의료인’에 관한 부분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는 집행기관의 재량권 행사에 의해 비로소 발생하는 것일 뿐 해당 법령 자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업무개시명령 등 계획 발표 당시 A씨는 전공의로서 진료 업무를 중단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의료법 제59조에 따른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적은 없으므로 기본권 침해가 확실히 예상된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