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일론 머스크’ 권도형, 미국 송환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건 핵심 인물
미국서 사기범 845년형...권도형은?
“나는 테라USD(UST)에 자신을 가지고 베팅했다.내 말과 행동은 100% 일치한다. 실패한 것과 사기 치는 것은 차이가 있다.”-권도형, 2022년 테라·루나 폭락 사태 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한국판 일론 머스크’, ‘가상화폐 젊은 천재’, 그리고 ‘피해액 50조원 사기꾼’.
21일(현지시간) 미국 송환이 결정된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는 한때 가상화폐 테라·루나를 발행하며 시장을 주도했다가 ‘희대의 범죄자’로 전락한 인물이다.
권씨는 2022년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 싱가포르로 출국해 도주 의혹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몬테네그로에서 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됐다. 한국과 미국은 모두 그의 송환을 요청했고, 몬테네그로 고등 법원은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해외로 도피한 지 22개월 만이다. 내달께 미국에 인도될 전망인 권 대표는 미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다단계 의심 받던 ‘김치코인’ 테라·루나 몰락
“테라·루나 같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생태계가 성장하는 동안은 작동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크리스천 카탈리니 매사추세츠공대(MIT) 암호화폐경제연구소 설립자(AFP인터뷰)-
피해액만 50조원 이상으로 알려진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이려해하면 두 가지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과 폰지 사기다. 테라USD가 떠오른 건 2021년이다. 당시 전세계에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불었다. 권씨가 만든 테라USD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가상화폐, 일명 ‘김치코인’이었다.
권씨는 테라에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적용했다. 주식과 다르게 가상화폐는 갑자기 폭락해도 막을 장치가 없다. 그래서 코인에 달러와 같은 안전 자산을 연결해 급격한 가격 변동을 막는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테라도 ‘1테라=1달러’로 가치를 유지하는 스테이블 코인이었다.
개발 초부터 테라는 폰지 사기라는 의혹을 받았다. 테라는 달러를 보유하지 않고 자매 통화인 루나에 가격을 연동했다. 테라가 1달러보다 싸지면 루나를 발행해 테라를 사들이고, 반대 상황이면 테라를 풀어 루나를 사들인다.
그렇다면 테라와 루나가 동시에 폭락하면 어떻게 될까. 상황을 모면할 방법이 없다. 미국에서는 이 위험을 지적하며 테라가 다단계 사기인 폰지 사기라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특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가상화폐끼리 돌려막기를 하면서 그럴듯한 이론으로 투자자를 모은다는 것이다. 권씨는 이러한 지적이 나올때마다 “혁신을 방해한다”며 무시했다.
결국 2022년 5월 가상화폐 시장 열기가 식으면서 테라는 무너지게 됐다. 테라·루나는 단 며칠 만에 -99% 이상 폭락했고 두 코인의 시가총액이 58조원 가량 증발했다.
사기꾼에 845년형 때리는 미국, 권도형은?
"오늘의 조치(권도형을 사기 혐의로 기소)는 소매 및 기관 투자자 모두를 황폐화하고, 암호화폐 시장에 충격을 준 테라의 붕괴에 피고인들의 책임을 묻는 것"-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거버 그레왈 이사 성명에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소해 진행 중인 민사 재판도 있다. SEC는 권씨가 테라 폭락 사태와 관련해 최소 400억달러(약 53조4000억원)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며 권씨와 테라폼랩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은 경제 사범에 엄격한 나라다. 권씨와 같이 ‘폰지 사기’를 벌여 650억달러(약 91조7000억원)의 피해를 입힌 버나드 메이도프 전 미국 나스닥증권거래소 회장은 무려 150년형을 선고 받았다.
미 경제 전문지 마켓워치에 따르면 역대 가장 많은 형량을 받은 경제 사범은 845년형을 선고받은 숄람 와이스다. 2000년 보험 회사를 상대로 한 4억5000만달러(약 6000억원) 규모 사기 혐의로 845년형을 선고 받았다. 2위는 와이스의 공범인 키스 파운드로 740년형을 선고 받았다.
권씨가 100년형 이상을 받을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법원 형량 산정에 병과주의를 적용한다. 한꺼번에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범죄 수만큼 징역형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100번 사기를 칠 경우, 개별 사건에 대한 형량을 다 더해 총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권씨는 늦어도 3월 22일까지 미국으로 송환될 전망이다. 권씨의 범죄인 인도 구금은 이달 15일 종료됐지만 권씨가 위조 여권 사건으로 선고받은 징역 4개월 가운데 형기가 37일 남아있다. 앞서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제드 레이코프 판사는 지난달 권씨의 송환 가능성을 고려해 SEC가 제기한 민사 소송 재판 기일을 올해 1월에서 3월로 연기했다. 이에 따라 권씨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오는 3월 25일 뉴욕 연방 법원 법정에 서게 된다.
이렇게 테라·루나 폭락 사건이 희대의 사기 사건으로 정리되면서 한국 가상화폐 시장의 어두운 역사로 남게 됐다. 지난해 12월 블룸버그통신은 널뛰는 한국의 가상화폐 시장 열풍을 보도하며 한국은 “권도형이 나고 자란 나라”라고 소개하며 “지난해 5월 테라가 붕괴하면서 한국 가상화폐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