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북일 정상회담? ‘기시다 방북’ 현실 가능성 있나 [디브리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조선중앙통신, 로이터]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을 하자 일본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회담이 열릴 경우 2002년 9월 국교정상화 이후 22년 만에 북한과 일본 정상이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이라는 방북 조건, 한미일 3국 공조 동요 가능성 등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김여정 발언 후 일본→미국 반응

20년 만에 북일 정상회담? ‘기시다 방북’ 현실 가능성 있나 [디브리핑]
국방부는 3일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자위적·당위적 불가항력의 군사력을 키우게 됐다고 주장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담화에 대해 “억지 주장이며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연합]

“일본이 정치적 결단을 내린다면 두 나라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

"유의하고 있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 대한 평가를 포함해 그 이상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향후 교섭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발언을 삼가겠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 -

“일반적으로 우리는 (북한과) 어떤 종류의 외교와 대화도 지지한다.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 정 박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관리 -

‘기시다 방북’ 이슈는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부터 시작됐다. 김 부부장은 지난 15일 "일본이 우리의 정당방위권에 대해 부당하게 걸고 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관계 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기시다)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이어 일본이 "서로를 인정한 기초 우(위)에서 정중한 처신과 신의있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 부부장은 자신의 발언이 "개인적 견해"라며 자신이 "공식적으로 조일(북일)관계를 평가할 위치"에 있지는 않다며 선을 그엇다.

다음날 일본에서도 관련 발언이 나왔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해당 발언에 “유의하고 있다. 협상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발언을) 삼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납치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자는 주장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납치, 핵, 미사일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과 회담을 추진하는 일본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정 박 대북고위관리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취재진과 만나 "일본 정부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려 하는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한국, 일본과의 정보 공유나 협력 수준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긴밀한 조율과 잦은 대화가 이뤄지면 좋다"고 덧붙였다.

‘지지율 바닥’ 총리과 ‘외교 고립’ 정상의 승부수?

20년 만에 북일 정상회담? ‘기시다 방북’ 현실 가능성 있나 [디브리핑]

"한·미 양국과는 달리 납북 문제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일본에 접근함으로써 (3국 관계를) 흔들고 싶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자신들이 양보해서까지 일본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히라이와 슌지 난잔대학 교수 (NHK 보도) -

하지만 일본 내 여론은 차갑다. 일본 언론은 기시다 정부의 대북 접촉을 ‘지지율 회복’으로, 북한의 대일 외교 완화 시도는 ‘한미일 3국 공조를 흔들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

실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3개월 연속 10%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 15일 지지통신 보도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16.9%로 10월 정권 출범 후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자민당 파벌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면서 여론이 등을 돌린 탓이 크다. 현재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해 현직 국회의원 370명 가량이 조사를 진행 중인데다, 관련 사건에 대한 기시다 총리 대응이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은 기시다 방북 추진을 보도하며 “기시다 총리가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지지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도 한국과 대화가 단절되면서 외교적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을 향한 한·미 정상의 태도가 갈수록 강경해지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라, 북한에서 일본을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인 납치’ 뭐길래…북일관계 변수

20년 만에 북일 정상회담? ‘기시다 방북’ 현실 가능성 있나 [디브리핑]
1970~1980년대에 북한 납치됐다고 알려진 일본인 17명 중 한 명인 요코타 메구미. 이 중 5명은 2002년 일본으로 귀국했지만, 나머지 12명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1977년 4월에 촬영된 메구미 사진. [일본 NHK 화면 갈무리]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것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일본은 북일평양선언에 기초해 납치와 핵·미사일 등 여러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 -

여기에 ‘일본인 납치 문제’라는 최대 변수도 있다. 일본인 납치문제는 일본에서는 '북조선(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라고 부르는데, 1970-80년대 일본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발생한 원인불명의 여러 실종사건을 통칭한다. 당시 일본 경찰당국은 행방불명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으나 이후 망명한 북한 공작원의 증언 등을 통해 북한과 관련된 일임이 드러났다.

과거에도 북한과 일본 간 관계에서 해당 사건은 중요하게 다뤄졌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치 일본 총리가 방북을 했을 때도, 김정일이 해당 사건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김정일은 사죄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북일평양선언에도 국교 정상화 회담 추진과 과거사 반성에 기초한 보상, (납치 등) 유감스러운 문제의 재발 방지 등 4개 항이 담겼다.

같은 해 10월 북한에 생존해있던 5명의 납치 피해자들은 24년만에 일본에 귀환했고, 2004년 2차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납북 피해자 5명의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일본으로 입국하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해당 사건이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실종 상태인 시민들이 있는 만큼,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강하다. 일본 정부는 12명이 북한에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은 12명 중 8명이 사망했고 4명은 아예 오지 않았다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