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디플레 벗어나자 현금 갈 곳 모색

日 정부, NISA 혜택 늘리며 투자 유도

주식시장에 대한 오랜 회의감이 ‘걸림돌’

日 '와타나베 부인', 주머니 열어 주식 살까[디브리핑]
일본 도쿄 시민들이 지난 12일 한 증권사의 닛케이 지수 전광판을 살펴보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높은 자금력으로 해외 자산을 사들이는 일본의 투자행위는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의인화 됐다. 와타나베 부인의 자금력은 버블 경제 이후 급격히 높아진 저축률로 쌓인 현금에서 나왔다. 그러나 일본의 오랜 저물가 기조가 저물고 있는 지금, 와타나베 부인의 통장에 쌓인 현금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본 중앙은행의 오랜 초저금리 실험이 끝나가면서 일본 가계가 가진 높은 비중의 현금이 주식과 부동산 등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가계는 총 2100조엔의 금융자산 중 절반 이상을 현금과 예금 등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13%)과 영국(31%) 등에 비교하면 훨씬 높은 비중이다.

지난 25년간 물가가 정체되거나 하락하던 디플레이션 시기 동안 일본 가계가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점점 더 많은 일본 기업들의 상품의 가격을 올리면서 지난 10월 소비자 물가가 2.9% 오르는 등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됐다. 일본 국민의 실질 소득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더이상 통장에 현금을 쟁여두는 것은 스스로 자산을 없애는 꼴이 됐다.

피터 테스커 아커스리서치 애널리스트는 “와타나베 부인들의 현금이 가치를 잃고 있다면 이들은 다른 나라 자산가들처럼 주식이나 부동산 등 실물 자산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도 가계의 현금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 일본 정부는 일본투자저축계좌(NISA)에서 주식에 투자하는 금액에 대해 평생 비과세 혜택을 제공한다. NISA의 연간 불입 한도는 120만엔에서 360만엔으로 늘리고 누적한도도 600만엔에서 1800만엔으로 상향 조정했다.

FT는 “이런 전략이 효과를 발휘 한다면 1980년대 주식 버블 붕괴 이후 지지부진한 주식시장에 대한 혐오감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가계가 자산 중 주식에 투자하는 비율은 단 24%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중 7%는 연금을 통해서다. 이는 영국(54%), 미국(75%)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알리안츠 베른슈타인은 일본 가계가 2%의 자산만 재배분하더라도 일본 주식시장에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절반 수준이 투자만으로도 닛케이 지수와 토픽스(TOPIX) 지수를 25% 이상 끌어올렸다.

실제로 증권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일본 개인들은 국내 3대 온라인 증권사를 통해 250만개의 새로운 증권계좌를 개설했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올해 일본 상사 5개사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는 소식도 주식 시장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스테파니 드류스 닛코자산운용 대표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전혀 없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 개인 중 약 20%만이 실질적인 투자자로 분류된다.

다만 주식시장에 대한 오랜 회의감은 넘어야 할 산이다. 실제 일본의 개인이 주식 투자에 뛰어들더라도 그 투자 대상은 일본 주식시장이 아니라 미국 등 해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내 유명 투자 인플루언서 하센 쿠니야마는 “일본의 2030세대는 일본의 미래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