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후 지원된 군사 지원만 58조원
우크라, 여름 대공습 이후 교착상태
미국·유럽 등 우크라 지원 물결 ‘시들’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면 과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 기업연구소 중요 위협 프로젝트 책임자 프레드 케이건)
미국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614억달러 규모의 예산안이 공화당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향후 우크라이나의 운명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양국간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하는 동안 미국과 동맹국은 우크라이나에 수백억 달러가 넘는 지원금과 군수 물자를 제공했다. 하지만 이번에 예산안 부결로 지원이 끊기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매체들에 따르면 미 상원은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함한 1105억달러(약 145조원) 규모의 안보 패키지 예산안을 절차 투표에 올렸지만 찬성 49표에 반대 51표로 부결됐다. 절차 투표는 목표 법안을 표결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사전 투표다. 현재 상원에서 51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지원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선 공화당의 협조가 절대적이었지만, 양당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에 예산안 통과를 촉구해왔다. 이번 예산 통과가 이뤄져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수 물자 등 추가 지원이 이뤄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 10월 긴급 지원안을 제출할 당시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말라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11월 중순 기준 이미 우크라이나에 배정된 620억달러(한화 약 82조1190억원) 중 97%를 사용했다. 지난해 2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보낸 무기 가치만 442억달러(한화 약 58조5208억원) 이상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동맹국들 역시 F-16 전투기 등 350억달러에 달하는 군용 물품 지원을 추가로 보내왔다. 그럼에도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예산 지원안이 수포로 돌아가면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여름 러시아를 상대로 대반격을 개시했지만 기대한 결과를 내지 못했고, 이어 전투가 힘들어지는 또 한번의 겨울에 접어들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30일 우크라이나 동북부 하르키우에서 가진 AP통신과 인터뷰에서 “겨울 전쟁은 전체적으로 새로운 단계”라며 지원을 호소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 2년 가까이 장기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꾸준한 지원 덕이 크다. 지난해 초 개전 초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변두리까지 진입해 영토 20%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수복하고 반격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과 동맹국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미국 내 여론도 등을 돌리고 있다. NYT는 이번 절차 투표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국경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한다며 지원안을 부결시키는데 이같은 여론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AP 통신이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부 지출이 과하다고 답한 이들은 45%에 달했다.
동맹국들의 지원이 점차 줄어드는 것도 미국의 지원이 더 절실한 이유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 중 하나로 손꼽히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지난 9월 20일 무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는 지난 5월부터 우크라이나에 EU 기금이 투입되는 데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슬로바키아에선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을 공약한 사회민주당(SD·스메르)이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0월 5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3회 EPC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공백을 유럽이 대체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는 미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모든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투입한 총액이 약 1560억유로(한화 약 221조8304억 원)인데, 미국은 혼자서 그 절반가량을 부담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