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1년 반만에 ASML 본사 방문 예정
EUV 노광장비 독점 중인 ASML…파운드리 성패 가를 핵심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이재용도 직접 찾아가는 네덜란드 반도체 슈퍼 을(乙)…이곳에 파운드리 1위 성패 달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오는 11일부터 네덜란드 출장에 나섭니다. 이번 출장의 핵심은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이라고 불리는 ASML 방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오래 전 ASML에 투자를 단행하는 등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6월 ASML 본사를 방문해 피터 베닝크 CEO와 사진을 찍으며 친분을 드러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재용 회장이 지난 2019년 선언한 ‘2030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에 ASML은 없어서는 안 될 곳입니다. 2나노 이하 첨단 공정 경쟁에서 ASML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누가 ASML의 마음을 사로 잡는 지가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칩만사에서는 ASML과 삼성전자의 파트너십과 향후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확보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ASML-삼성, 오랜 전략관계…‘슈퍼 을’ 사로잡아야 파운드리 경쟁력 ↑
이재용 회장은 오는 12일 ASML 본사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하며, 클린룸도 함께 둘러볼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방문으로 약 1년 반만에 피터 베닝크와 이재용 회장의 ‘투샷’이 이번에도 성사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ASML은 삼성과 우호적인 관계를 오랫동안 맺어왔습니다. 삼성전자는 11년 전인 지난 2012년 ASML의 지분 3.0%(1259만 55757주)를 3630억원에 사들였습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곳이기 때문에,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탁월한 투자였습니다. 삼성전자는 2016년 3분기에 ASML 주식의 절반가량인 1.4%를 팔아 7500억원을, 올해는 2~3분기에 걸쳐 총 471만7680주를 처분해 약 4조3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10배가 훌쩍 넘는 이익을 거둔 것이죠.
현재 ASML은 이재용 회장에게 가장 절실한 파트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ASML의 EUV 노광장비를 얼만큼 많이, 빨리 확보하느냐가 파운드리 기술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회장은 이번 순방 일정에서 피터 베닝크 CEO와 EUV 장비 공급 관련 논의에 집중할 것이 유력합니다.
EUV 노광장비는 웨이퍼에 미세한 전자회로를 빛으로 새겨넣는 역할을 하는데, 7나노 이하의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EUV 노광장비 1대당 가격은 2500억~3000억원 수준인데 가격과 상관없이 없어서는 못 팔 정도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삼성전자를 포함한 TSMC, 인텔 등 다양한 파운드리 업체가 자신들에게 가장 먼저 장비를 달라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기준 TSMC가 대만 생산 기지에 두고 있는 EUV 장비는 100대 가량으로 파악됩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40여대 수준에 그쳐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멀고도 먼 TSMC 잡기”…하이NA 장비 필요한 2나노가 승부수
특히, 삼성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TSMC와의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 도입으로 TSMC보다 빠르게 3나노 공정 기반 양산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시장 점유율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습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57.9%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유지했습니다. 반면 2위인 삼성전자는 12.4%를 차지하는데 그쳤습니다. 전분기(11.7%) 대비 소폭 오르긴 했지만 TSMC와의 격차는 2분기 44.7%포인트에서 3분기 45.5%포인트로 오히려 확대됐습니다.
삼성전자가 터닝포인트로 보고 있는 건 2나노입니다. TSMC는 현재 3나노까지는 핀펫(FinFET) 공정을 이용하고 있고, 2나노부터 GAA 기술을 활용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는 TSMC보다 약 3년 빠르게 GAA 기술을 도입한 만큼, 본격적으로 GAA 기술로 맞붙게 되는 2나노부터는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2나노 기반 양산에 ASML의 차세대 EUV 장비인 ‘하이 뉴메리컬어퍼처(이하 하이NA)’가 필수란 점입니다. ASML이 언제 하이NA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전세계 파운드리 기술 발전의 타임테이블이 달라집니다. 삼성전자는 2025년 하이NA 장비 5대를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이NA 장비는 기존 EUV 장비보다 가격이 2배 가량 비쌉니다. 1대에 4000억~6000억원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외로 복병은 인텔입니다. 인텔은 지난해 말 이미 ASML과 하이NA 장비 6대를 공급받기로 계약을 마쳤습니다. ASML이 생산하는 첫 하이NA 장비를 내년 말 납품받을 예정입니다. 인텔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2위 도약을 선언하고 내년 안에 2나노 이하 공정 양산에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ASML은 2027~2028년까지 연간 생산할 수 있는 하이NA 장비가 20대가 될 수 있도록 생산량을 안정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 전까지 소량의 물량을 둘러싼 삼성전자, TSMC, 인텔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재용 회장에게 정말 중요한 이번 출장. EUV 장비 확보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