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랑이 없는 건 병든 사회 때문”
생존·존중 불안 해소되면 사랑문제 해결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오늘날 소셜미디어에는 사랑과 행복이 넘쳐난다. ‘내가 더 잘났다’며 과시하는 경쟁 사회에서 ‘자랑’으로 전시된 일상이 점철된 까닭이다. 그 밑바닥엔 낙오된 루저가 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이 깔려 있다. 현대인들이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고 허황된 사랑과 돈에 더욱 집착하게 된 이유다. 동시에 인간을 혐오하고 증오하게 된 젊은이들도 빠르게 늘었다.
김태형 심리학자는 그의 신작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를 통해 완전히 파편화된 핵개인 시대에서 나타난 가짜 사랑의 면면을 촘촘히 추적했다. 특히 저자는 가짜 사랑을 하는 원인을 개인에게 묻는 주류 심리학의 한계를 일갈했다. 사람들이 진짜 사랑에 실패하는 근본에는 병든 사회가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가 ‘싸우는 심리학자’라고 불리는 이유다.
공동체를 파괴한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 불안을 키웠다.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이다. 과거의 생존 불안은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겪은 불안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생존 불안은 나 홀로 겪는 혼자만의 끔찍한 공포다. 고립적 생존 불안이 극대화된 이유다. 이 같은 이유로 저자는 1990년대 이후 불평등은 계급 간 불평등에 개인 간 불평등까지 더해진 ‘최악의 불평등’이라 설명한다.
존중 불안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에서 비롯된 공포다. 과시 행동을 하는 상대가 자신을 경멸한다는 느낌에서 시작된 고통이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사람한테 다시 과시하는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현상과 맞닿아 있다. 예컨대 고급 외제차를 타는 사람이 국산 대형차를 타는 사람에게, 대형차를 타는 사람이 중형차를 타는 사람에게, 중형차를 타는 사람은 소형차를 타는 사람에게 과시하는 ‘학대 도미노’가 이어진다.
이처럼 서열 동물이 되도록 강요받으면서 사랑은 도구가 됐다. 한 마디로 가짜 사랑이다. ‘결혼 시장’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현대인들은 쇼핑카트에 담을 물건을 고르듯 결혼 상대를 선택한다. 돈 많은 남성을, 또 예쁜 여성을 구입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외모는 이윤을 효과적으로 창출하는 탁월한 자본이 됐다. 에바 일루즈는 “문화산업은 미모 숭배와 나중에는 건강 숭배, 성적 특징으로만 남성과 여성을 정의하도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고 비판했다.
“사랑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과 사회 심리학자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의 경고처럼, 저자 또한 진짜 사랑할 만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 사랑하는 능력을 갖기란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공동체를 상실한 채 파편화된 개인으로 경쟁하는 사회에서, 돈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세상에서, 진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 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그 해법으로 소득, 직업, 주택 등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조건을 보장하는 ‘기본 사회’를 제시했다. 경쟁에서 낙오되더라도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거라는 생존 불안에서는 최소한 해방되기 위해서다.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우위에 따른 권력은 타인의 존엄을 짓밟기 어렵다. 그렇다면 존중 불안도 해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이런 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개인은 불건전한 욕망에서 해방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이 땅에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그날이 오면, 마침내 사랑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김태형 지음/갈매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