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도 이성 만큼 감정도 지배
행동경제학으로 사회현상 설명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모바일 쇼핑 시대에도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는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의 최고 인기 상품은 단연 핫도그다. 2000원만 내면 긴 빵에 두툼한 소시지와 양파, 피클을 넣은 미국식 핫도그를 먹을 수 있다. 이걸 먹으려고 일부러 매장에 올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이 제품을 코스트코는 매장 어디에서 팔까. 바로 고객 동선의 마지막 지점인 출구 부근이다.
코스트코가 핫도그를 매장 한가운데가 아닌, 출구 쪽에서 파는 이유는 사람들이 절정 및 결말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전체 경험을 평가하는 습성이 있어서다. ‘행동 경제학의 대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사람들의 이런 특성을 고려해 경험의 순서와 강도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이른바 ‘경험 설계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합리적인 인간’이 전제되는 자본주의에서 그 핵심인 소비가 결코 이성적 영역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방증인 셈이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센터장은 그의 신간 ‘감정경제학’을 통해 가스라이팅, AI(인공지능)의 위협, 조용한 퇴사, 과시적 소비 등 각종 사회 현상을 행동 경제학 입장에서 설명한다. 많은 사회 현상이 경제학으로 설명되는 동시에, 모든 경제 활동이 이성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행동 경제학 자체가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전제를 부정하기에 더 유연해질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 발생한 사회적 이슈에 따른 20가지 감정에 따라 현 자본주의를 설명한다. 예컨대 뇌가 단순하고 게으른 것을 좋아하다 보니 편리함을 추구하는 기술 발전을 가져왔고, 자신의 일 마저도 대신 해줄 수 있는 로봇이나 AI 개발까지 촉진시켰다. MZ(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조용한 퇴사’는 사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회적 트렌드로 해석할 수 있으며, 각종 캐릭터 상품 등은 ‘예쁜 쓰레기’임을 알지만 내 기분을 좋아지게 하기에 구매한다.
심지어 가장 이성적일 것 같은 기업의 투자 영역에서도 감정이 지배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투자는 기업가의 직감에 의존하기 때문에 경기 변동시 감정은 투자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또 정부에서 물가 관리를 할 때, 혹은 사람들이 경기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살피는 지표는 명목 이자율이 아니라 기대 인플레이션이며, 립스틱이나 속옷 매출, 여성들의 치마 길이에서도 경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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