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정부가 가계부채 축소를 위한 움직임에 주력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주요 은행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되레 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대출금리 인상 방안까지 동원된 상황, 실익없는 ‘은행 때리기’에 소비자들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리 높였지만…5대 은행 가계대출 1달 만에 3.4조원↑
2일 금융권에 따르면 30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85조7820억원으로 9월말(682조3294억원)과 비교해 3조4526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 달 만에 4조728억원이 불어난 지난 2021년 9월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 들어 가장 큰 폭의 월별 증가세를 보인 8월(1조4911억원)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이같은 가계대출 상승세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했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말 520조9861억원으로 전월(517조858억원)대비 3조1273억원 늘었다. 심지어 약 2년째 감소세를 지속하던 신용대출도 이달 들어 증가세로 전환했다. 지난달말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7조9490억원으로 전월(107조3409억원)과 비교해 6081억원 늘었다.
최근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확산의 주요인으로 은행들의 무분별한 대출행태를 지적하며, 압박에 나섰다. 이에 주요 은행들은 하나둘 가계대출 금리 일괄 인상에 나서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실제 지난달 KB국민·우리·NH농협은 우대금리 축소 등을 통해 가계대출 금리를 최대 0.3%포인트(p) 인상했다. 신한은행 또한 이날부터 가계대출 상품 금리를 소폭 인상하기로 결정했으며, 우리은행도 이달 3일 지난달에 이은 추가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세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되레 기존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만 커졌다. 1일 기준 5대 은행의 변동형 주담대(신규코픽스 기준) 금리는 연 4.55~7.18%로 한 달 반 전인 지난 9월 15일(4.09~6.04%)과 비교해 상·하단 각각 1.14%p, 0.46%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 주기를 맞이한 변동형 주담대 차주들의 금리 부담이 반년 만에 최대 1%p가량 높아졌다는 얘기다.
은행 ‘종노릇’ 비판에 반발 잇따라…정책 ‘엇박자’ 우려도
이런 와중 정부는 다시금 은행의 ‘이자장사’를 비판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소상공인들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이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한숨 쉬었다”고 지적했다. 고금리로 인한 민생부담의 책임을 은행권에 묻는 메시지가 나오며, 초과이익 환수 논의에도 다시금 불이 붙고 있다.
‘은행 때리기’가 계속되며 업계의 반발도 잇따른다. 가계부채 억제책 등 정책 방향성에 따른 문제를 은행권에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재정 투입 없는 서민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며 “일관성 없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잠재적인 손실은 은행 문턱을 높여 금융취약계층에 피해가 전가되고 고통의 악순환을 양산한다”고 비판했다.
자영업 부채 부실의 문제를 은행권에만 돌리는 것에도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상반기말 기준 자영업 대출의 채무 불이행 금액 9조1343억원 중 은행 채무 불이행액(1조2532억원)의 비중은 1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되레 전 업권 중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의 채무 불이행액(6조3112억원)이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각에서는 연초와 같이 은행들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당국은 현재 가계부채 확대 방지를 위해 은행권에 금리 인상 등 대출 태도 강화를 주문한 상태다.
은행권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의 경우 개인사업자대출 외 생활안정자금 마련 목적의 주담대 등 가계대출로 사업자금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고, 이를 용도별로 분리하기는 쉽지 않다”며 “특정 대출자의 부담을 낮추려다 은행권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가계부채 확산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