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측 비용 상승 압력…대외의존도 높아 충격 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불확실성 확대

물가 목표 수렴 지연 가능성…“2025년 상반기 전망”

긴축 장기화에도 꺾이지 않는 물가 …안 잡히는 이유는[머니뭐니]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 보는 시민들 [연합]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유례 없는 고강도 긴축으로 안정돼 가던 물가가 최근 다시 꿈틀대고 있다. 수요측 압력은 약화됐지만 공급 측면의 압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생하면서 물가의 불확실성을 한층 키웠다. 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목표 수준까지 내려가는 시기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8%로 9월(3.7%)보다 높아졌다. 올해 1월 5.2%에서 점점 하락하며 7월 2.3%까지 내려갔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3.4%로 반등한 후 석 달째 3%대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에 비하면 낮아지긴 했지만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인 2%는 여전히 요원하다.

먹고 입는 체감물가 '껑충' 월급은 '마이너스'...

우리나라는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물가 둔화는 다른 주요국보다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9월 기준 한국의 소비자물가 목표수렴률(디스인플레이션 진도율)은 60.5%로 미국(76.1%)이나 유로지역(73.3%)보다 낮다. 근원물가 목표수렴률도 43.5%로 유로지역(32.4%)보단 높지만 미국(54.3%)에는 못 미친다.

이에 대해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국과 유로지역의 물가 정점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더 높았기 때문에 떨어지는 속도가 더 가팔라 보일 수 있지만 빠른 시간 내에 3% 선 밑으로 내려간 나라는 선진국 중 우리가 유일하다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물가 안정 성과는 저희가 더 좋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한은 조사국은 최근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빠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특히 근원물가가 경직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물가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은 수요측 요인보다 공급 측면의 압력 탓이 크다. 최근 수요측 압력과 노동시장의 긴장도가 약화되고 있지만 원자재 대외의존도가 높은 데다 환율도 상승하면서 비용 상승 압력의 파급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유가 충격이 근원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와 유로지역에서 충격의 지속성이 미국에 비해 1~2년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팬데믹 초기에 공급충격을 완충했던 전기·가스요금 인상폭 제한, 유류세 인하 등의 정책 지원이 비용 압력을 이연시킴으로써 향후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흐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은은 내다봤다.

여기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물가상승률 둔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한은은 “주요국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목표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반등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수요측 압력 약화 등으로 둔화 흐름을 재개할 것으로 보이지만 둔화 속도는 중동 사태 등으로 당초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과 같이 유가 및 농산물 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둔화 재개 시점도 미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물가를 경험하면서 경제주체의 기대 형성과 가격·임금 설정 행태가 변했을 가능성, 분절화, 친환경 전환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움직임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도 디스인플레이션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다”면서 “지난 8월 예측한 물가상승률 하락 경로보다는 속도가 늦어지지 않겠냐는 게 금통위원들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8월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3.5%, 2.4%로 제시했는데, 오는 30일 경제전망에서 수정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 총재는 이달 1일 한은·대한상공회의소 공동 세미나에서도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내년 유가를 84달러 정도로 예상했는데, 90달러 이상으로 오른다면 (물가 등) 예측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물가가 예상보다 빨리 내려가지 않고 고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란 시장의 우려가 여전하다.

다만 우리나라가 물가목표에 수렴하는 시점은 주요국보다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 전망 서베이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과 투자은행(IB) 등 주요 기관은 한국의 물가목표 수렴 시점을 2025년 상반기 중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2026년께)이나 유로지역(2025년 하반기)보다 먼저 목표치에 다가갈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의 배경에는 근원물가 상승률의 현재 수준과 모멘텀의 국가별 차별화가 주로 작용하고 있다. 한은은 “미국과 유로지역의 근원물가 상승률 수준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폭 높은 데다 물가상승 모멘텀(전기 대비 상승률)을 비교해 보더라도 수요·임금 압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 근원서비스물가 상승률이 과거 평균을 크게 상회하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을 제약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 상승률이 예년 수준에 근접하면서 모멘텀이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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