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안보정권 수립해 가자지구 책임서 벗어날 것”

하마스 축출 후 가자지구 미래에 대한 논의 본격화

유일한 합법 정부 PA 대안으로 부상…떨어진 대중신뢰 등 걸림돌

만약 하마스 축출되면...가자지구 통치권 누구 손에 [디브리핑]
지난 17일(현지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만나고 있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모습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전 개시가 임박한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몰아낸 이후 가자지구의 통치권을 누가 가져야할지를 놓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다시 가자지구를 장악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로 낙인 찍힌 현 PA가 가자지구까지 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이 3단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1단계 공습에 이어 2단계는 지상군 투입을 통한 전술적 작전, 그리고 이후 가자지구에 새 안보 정권을 세우는 것이 3단계다. 전쟁을 마무리 한 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해 통치할 의도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하마스의 통치를 종식시키면서도 동시에 점령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관심은 하마스 이후의 가자지구 통치권이 누구에게로 갈 것인지로 모아지고 있다. 지난 21일 블룸버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마스 축출 이후 가자지구의 장래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유엔이 지지하고 아랍 각국 정부들이 관여하는 과도정권 수립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만약 하마스 축출되면...가자지구 통치권 누구 손에 [디브리핑]
23일(현지시간) 남부 이스라엘에서 바라본 가자지구의 모습 [로이터]

가자지구 통치권을 PA에 돌려줘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매체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이들, 특히 이스라엘의 동맹국들은 하마스를 뿌리뽑고 가자지구를 장악할 주체로 PA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일 이스라엘 제1야당 예쉬아티드 대표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 역시 PA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독립국가 수립 목표를 상실한 자치 정부에 팔레스타인인들이 거는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해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상황에 정통한 이들은 PA가 가자지구 통제권을 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첫 공식 합의인 오슬로협정을 통해 요르단강 서안에 들어선 준자치기구인 PA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에 이어 지난 2005년 이후 마무드 아바스 현 수반으로 이어지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파타가 이끌고 있다.

국제사회가 유일하게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는 PA는 설립 이후 약 30년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설’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서서히 영향력이 약해져왔다. 2006년에는 총선에서 파타가 하마스에게 패배해 가자지구에서 축출되면서 현재 PA는 서안지구 일부만을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하마스 축출되면...가자지구 통치권 누구 손에 [디브리핑]
17일(현지시간) 서안지구 나블루스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하마스 깃발을 들고 현 정부(PA)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외신들은 “PA는 (가자지구뿐만 아니라) 서안지구 전역의 보안 통제권마저도 상당 수 카타이브 제닌, 라이온스덴 등 이스라엘 정착촌 확장 등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해 잃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이후 PA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하마스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치솟는 반면, 그간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지지해온 PA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7일 수백명이 숨진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병원 폭발 참사를 계기로 서안지구에서는 “대통령 타도”를 외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거리를 점령하기도 했다.

살람 파야드 PA 전 총리는 “정통성을 인정받은 PA에 현재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PA가 정말 아주 빠르게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세속주의 파타와 하마스가 손을 잡고 통합 정부를 구성해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서안지구 나블루스의 한 자치정부 관리는 “하마스에게는 파타가 가진 국제적인 정통성이 필요하고, 파타는 하마스가 가진 인기가 필요하다”면서 “아바스 수반은 파벌주의를 버리고 하마스를 결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