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월드컵 13개국→현재 48개국으로 참가국 확대
대형 이벤트 단독 유치 사실상 어려워…월드컵 공동 유치 시대
2034년 개최지 아시아·오세아니아로 축소…사우디 출사표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이 2030년 월드컵을 아프리카와 유럽, 남미 등 3개 대륙에서 치르기로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일(현지시간) FIFA는 평의회를 통해 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유럽의 스페인·포르투갈을 2030 월드컵 공동주최국으로 선정하고, 이와 함께 월드컵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막전 등 일부 경기를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1회 월드컵인 1930년 대회는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오는 2026년 월드컵부터 본선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비용·인프라 등 여건 상 여러나라가 월드컵을 공동주최 하는 것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FIFA가 ‘큰 손’ 사우디아라비아의 2034년 월드컵 유치권 획득을 위한 ‘길 닦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성명에서 “분열된 세계에서 FIFA와 축구는 하나가 되고 있으며 FIFA 평의회는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월드컵 100주년을 기념하기로 결정했다”면서 “3개 대륙과 6개 국가를 하나로 묶어, 월드컵 자체를 기념하는 행사에 전세계가 동참하도록 초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3개 대륙이 함께 치르게 된 ‘월드컵 100주년’ 소식을 전하면서, 1회 월드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대회 규모와 참가국 수로 인해 월드컵이 완연한 ‘공동 유치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인정했다.
실제 우르과이에서 열린 첫 번째 월드컵의 참가국은 13개국에 불과했지만, 오는 2026년 캐나다·멕시코·미국 월드컵은 역대 가장 많은 48개국이 참가한다. 3개국이 월드컵을 공동개최 하는 것은 2026년 월드컵이 처음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참가국 규모와 경기장에 대한 까다로운 FIFA의 요구는 이제 월드컵을 단독으로 개최할 수 있는 나라가 사실상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스포츠 전문매체 디애슬래틱은 월드컵 유치가 천문학적 수익만큼이나 국가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일이며, 실제 지난 2010년에 월드컵을 치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여전히 국민들이 당시 월드컵 유치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매체는 “FIFA 기준으로 (단독 유치를 위해서는) 축구 경기장이 12개가 준비돼야 한다”면서 “(돈이 많은) 카타르 조차 12개가 아닌 8개의 경기장 밖에 준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FIFA가 남미까지 2030년 월드컵 경기 유치국으로 포함시키면서 결과적으로는 월드컵 유치 열망에 차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차기 개최국으로 밀어준 셈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FIFA는 대륙별 순환 원칙에 따라 북중미카리브와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6개 대륙 중 특정 대륙이 잇따라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026년과 2030년에 차례로 북중미와 유럽, 아프리카가 월드컵을 치르는만큼 차기 개최지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로 좁혀진 상황이다. 인판티노 회장도 이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국가만이 차기 월드컵 유치 경쟁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NYT는 “이날 결정은 FIFA의 가장 가까운 후원자 중 하나인 사우디가 그토록 갈망해 온 월드컵이라는 세계 무대 유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예상대로 FIFA의 발표 불과 몇 시간 후 오는 2034년 월드컵 단독 유치 추진을 선언했다. 사우디 축구연맹은 성명을 내고 “사우디에서 진행 중인 사회 경제적 변신과 뿌리 깊은 축구에 대한 열정의 영감을 끌어내 세계 수준의 대회를 개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아시아, 오세아니아지역에서 차기 월드컵 유치를 사우디와 경쟁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없다.
사우디는 자국 프로축구 리그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네이마르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끌어들이고 사우디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 골프투어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와 합병하면서 세계 스포츠계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디애슬래틱은 “사우디는 계획한 듯 FIFA의 결정 직후 월드컵 단독 유치 추진을 발표했다”면서 “2030년 월드컵 개최국 발표의 승자는 사우디”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