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TSMC가 독일에 ‘유럽 1호’ 공장을 짓기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총 14조 5000억원 가량이 투입될 것으로 보이는데, TSMC가 부담하는 건 5조원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독일 정부가 지원합니다.
유럽 각국이 반도체 생산 시설 유치를 위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까지도 조용합니다. 국내와 미국 중심으로 공장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전문가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양사가 유럽 공장 건설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삼성, SK에게 유럽 공장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TSMC, 첫번째 유럽 공장 공식화…차량용 반도체 양산
8일(현지시간) TSMC는 이사회를 열고 독일 드레스덴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안건을 확정했습니다. TSMC가 유럽에 건설하는 첫 반도체 공장입니다. 이사회는 34억9993만 유로(약 5조700억 원)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의 투자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공장 건설에는 약100억 유로(14조4200억원) 정도가 투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TSMC가 이 중 35억유로 정도를 투자하고, 독일 정부가 총 투입액의 50%인 50억 유로(7조2240억원)를 보조할 전망입니다. 내년 하반기 착공해 2027년부터 양산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TSMC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 없는 투자입니다. 해당 공장에서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제공할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양산할 것으로 보이는데, 독일은 전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자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장샤오창 TSMC 선임부사장은 지난 5월 유럽의 한 기술포럼에서 “유럽에 들어설 신규 공장은 28나노미터 성숙 공정을 기반으로 한 차량용 반도체인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 등 제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이번 공장은 대만·독일·네덜란드 세 국가 회사들의 합작으로 운영됩니다. 독일 차량부품 회사 ‘보쉬’, 독일 반도체 회사 ‘인피니언’,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가 참여합니다. 지분의 70%는 TSMC가 갖고 보쉬, 인피니언, NXP가 각각 지분의 10%씩을 보유합니다. 독일 정부 보조금 50억 유로, TSMC 부담금 35억 유로를 제외한 나머지 15억 유로를 세 회사가 부담합니다.
인피니언과 NXP는 세계 3대 차량용 반도체 업체 중 1·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인피니언은 12.4% 점유율을, NXP는 11.6%를 기록했습니다.
“ESG 때문에 유럽 공장 필요해질 것”…재생에너지 확보가 관건?
현재 독일에는 TSMC 뿐 아니라 인텔도 반도체 공장을 지을 예정입니다. 그런데 삼성과 SK는 별다른 유럽 투자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수조원의 보조금까지 주겠다는데, 너무 조용해서 의외입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삼성과 SK가 유럽 공장 건설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환경 문제 때문입니다.
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도 독일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가능성이 있는데, 바로 ESG 때문”이라며 “한국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제한적이라 팹을 늘리고 싶어도 어려운 반면, 독일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상당히 용이하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50년 RE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RE100이란, 기업 생산 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성전자는 2020년 미국, 유럽 중국 공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율 100%를 기록하며 RE100을 달성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해외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했습니다.
문제는 국내입니다. 주요 거점인 국내 공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률이 낮은 탓에 전체 글로벌로 보면 RE100은 달성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재생에너지 전환률은 31%, SK하이닉스는 39.6%입니다. 해외 사업장과 비교해 크게 낮습니다.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인 나라로 꼽힙니다. 지난 10년여 간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원전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해온 덕분입니다. 지난해 독일 전력 생산에서 풍력·바이오매스·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율은 44.6%에 이릅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앞으로 더욱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인텐시브’한 산업이 될 것”이라며 “2050년 RE100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워놓은 만큼, 재생에너지 전환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단 삼성과 SK는 미국과 국내 중심으로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입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용인에 추진 중인 세계 최대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300조 투자 계획을 밝혔습니다.
SK하이닉스도 향후 미국에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것이며, 일단은 용인 원삼면에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