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재정전략회의 늦어진 영향
이전 정부선 회의 개최 후 부처·공공기관 예산 요구안 받아
내년 예산 줄어 집행 예산 줄면 경제성장률 하락 가능성도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모 공공기관장은 지난 3일 오후 퇴근시간 전까지 내부 보고를 받고 최종 결재까지 정신이 없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린 이후 30일 오후 5시께 예산 당국으로부터 이미 제출한 내년 예산안을 3일까지 다시 수정·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삭감 규모는 기존 예산 요구안에서 30%. 요구안 규모를 30%까지 줄이지 못하면 그 사유를 제출하라는 지침도 통보받았다.
예산 당국이 2024년 예산안을 마련하기 위해 1, 2차 심의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최근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내년 예산 요구안을 수정 제출하는 상황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재현됐다. 이는 지난해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예산안 제출 기한보다 늦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건전재정을 기치로 내걸고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면서 내년 경제성장률 저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9일 정부·공공기관 등에 따르면 예산 당국은 최근 각 부처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조정실장들을 소집, 3일까지 내년 예산을 재요구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각 부처는 매년 5월 31일까지 해당 부처 산하 사업에 대한 다음해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한다. 기재부는 이들의 요구를 기초자료 삼아 8월말이나 9월초에 예산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
이번 지침은 올해 5월 31일까지 이미 제출한 각 기관별 예산안을 다시 짜서 3일까지 제출하라는 것. 국책연구기관 등 공공기관은 30%까지 줄이라는 구체적인 수준까지 통보를 받았다.
발단은 “예산을 얼마나 많이 합리화하고 줄였는지에 따라 각 부처의 혁신 마인드가 평가될 것”이라는 윤 대통령의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의 발언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내년 예산안 등 국가의 재정 현안을 논의하는 최고급 회의체다. 회의 결과에 따라 내년 예산안의 방향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번처럼 예산 당국이 부처와 공공기관의 내년 예산 요구안을 다시 제출하라는 것은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리는 날이 요구안 제출 기일보다 늦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까지는 매년 5월말까지 부처와 공공기관이 다음해 예산 요구안을 제출하기 전에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어 기본 방향을 정하면 이를 반영한 기관별 예산 요구안을 제출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6월 28일, 2022년에는 7월 7일에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다.
앞서 2021년에는 5월 27일, 2020년에는 5월 25일, 2019년에는 5월 16일에 각각 열렸다. 국가재정전략회의 이후 재정 기본 방향이 반영된 부처 예산 요구안 제출이 가능했다.
국가재정전략회의가 5월 중에만 열렸더라면 윤 대통령이 언급한 국방과 법 집행 등 국가의 본질적 기능 강화, 약자 보호, 미래 성장 동력 확충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한 내년 예산을 부처와 공공기관이 다시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혁신과도 궤를 달리 한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예산을 줄이면 한국 경제의 경제성장률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당장 올 하반기부터 걱정이다. 예정된 지출을 강제로 줄이는 ‘강제불용’까지 시행할 경우 경기 대응에 나설 여력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기재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본예산 대비 총지출은 240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6조5000원 줄었다.
총지출 진도율(37.7%)은 1년 전(39.3%)보다 1.6%포인트 낮아 10조9000억원(결산 기준)의 세수 결손이 있었던 2014년(진도율 36.5%) 이래 최저 수준이다. 지난 10년(2013~2022)간의 평균 진도율(39.8%)보다도 2.1%포인트 작다.
지출 규모로 보면 4월까지 평년 대비 약 14조원을 덜 쓴 셈이다. 코로나19 대응 예산이 편성된 2021년·2022년을 제외한 평균 진도율은 39.1%로 올해 진도율은 이보다도 1.4%포인트 낮다.
정부가 지출을 줄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올해 5월까지 전년 대비 세수 부족분은 36조원에 이른다. 올해 연간 단위로는 약 40조원이 부족할 전망이다.
국채 발행 없이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세수 펑크’에 대응할 방법은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는 ‘불용’ 뿐이다. 지난달 22일 국회 기재위 현안질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재정 집행을 성실히 하더라도 늘 불용금액이 일정 부분 나온다”고 말했다.
앞서 세수 결손이 발생한 2013년과 2014년에도 정부는 편성한 예산 중 각각 18조1000억원, 17조5000억원을 남겼다.
그러나 정부 재정지출 감소는 승수효과를 통해 사회 전체의 부를 더 감소시킨다.
2019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정부 지출 승수효과가 1.27(5년 누적 기준)라고 분석한 바 있다. 4월까지 사용하지 않은 14조원에 승수를 곱하면 국내총생산(GDP)에 미친 영향은 17조7800억원(14조원X1.27)에 이른다. 지난해 명목GDP 2161조8000억원의 0.82% 수준이다.
기재부는 세수를 재추계해 이르면 8월말에 발표할 예정이다.
※[세종백블]은 세종 상주 기자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에 대한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은 물론, 정책의 행간에 담긴 의미, 관가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연재물입니다.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공무원들의 소소한 소식까지 전함으로써 독자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