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대’를 기르는 ‘아날로그 부모’의 속사정 [북적book적]
한 학생이 에듀테크의 일환인 원격 스마트 러닝 시스템을 통해 개별 학습을 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엄마는 좀 이상한 것 같아. 휴대폰 사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반대를 하더니, 어제는 남들 다 다니는 코딩 학원은 왜 안 다니냐고 야단인 거 있지.”

A(43) 씨는 최근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친구와 하는 통화 내용을 듣고는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휴대폰, 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를 얼마나 허용할 지 갈팡질팡하는 엄마의 모습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에 너무 노출되면 아이들의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하고, 그렇다고 모두 차단하기에는 디지털 교육이 일상화 된 요즘 우리 아이가 다른 애들보다 뒤처질까봐 무섭다.

A씨는 “애들 친구 엄마들과도 아이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해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눠도 결국 결론없이 대화가 끝난다”며 “어떤 게 정답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소위 ‘알파 세대’라고 불리는 2010년 이후 태생인 우리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가 일상화 된 ‘디지털 네이티브’다. 이들에게 태어나서 알게 된 첫 친구는 어쩌면 스마트폰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단순한 기계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들을 양육해야 하는 부모는 철이 들어 디지털을 후천적으로 알게 된 세대다. 스마트폰이, 디지털이 자녀에게 필수라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인간관계까지 맺는 현실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때문에 세대 간 ‘문명의 충돌’이 발생한다.

‘디지털 세대’를 기르는 ‘아날로그 부모’의 속사정 [북적book적]

소니아 리빙스턴 영국 런던정경대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그의 신간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에서 “단순히 디지털이 좋지 않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지적·신체적 활동이 더 좋다는 문제 의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무조건 스마트폰은 나쁘고 오래 들고 있으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기 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빙스턴 교수는 어린이·인터넷·미디어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온 미디어 리터러시 분야의 전문가다. 지난해 1월 교육부 등이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 관련 주제로 강연과 대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얼리샤 블럼-로스 트위치 시니어 디렉터와 함께 지난 2015년부터 2년 간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73개 가정에 대한 심층 연구 및 2017년 영국 전역 200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등을 바탕으로 디지털 세대를 키우는 아날로그 부모들의 고민을 들여다봤다.

리빙스턴 교수는 디지털 육아를 크게 ▷수용 ▷균형 ▷저항 등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아날로그 부모들은 어느 한 유형에만 속하지 않고 여러 유형이 내면에서 공존, 충돌한다. 저자는 “디지털 기기와 온라인 강의 위주의 교육 현장으로 인해 디지털 기기의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단속만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아이들을 위해 잠시 멈춰 찬찬히 관찰하고 다층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디지털 세상에서 내려야 하는 모든 판단을 양육자인 부모에게만 떠 넘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교사, 정책 입안자 등 교육과 관련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부모들의 디지털 딜레마에 공감하고 현실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부모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 디지털 사회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신선하다. 아프리카 속담에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소니아 리빙스턴·얼리샤 블럼-로스 공저/박정은 옮김/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