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제가 쓴 기사 중에 단연 가장 주목 받은 기사는 지난 8일 쓴 ‘1억이 24시간만에 34억원으로…美SEC 제소 직전 수상한 거래 포착’입니다.
30분만에 5배 넘게 불어나고, 24시간이 지나자 34배 수익을 얻었다는 대박 투자의 세계에 많은 독자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주변에서도 ‘옵션’ 거래에 대해 물어보는 몇몇이 있었습니다. 합법적인 시장인데다 큰 목돈이 없어도 단기에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니 귀가 솔깃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죠. “주식하면 혼자 망하고 선물·옵션은 패가망신한다.” 그만큼 옵션의 세계는 위험하고,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옵션이 위험한 이유를 찬찬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무턱대고 뜯어말리는 것보다 그래도 뭔가 그럴 듯한 이유를 대면서 말려야 설득이 될테니까요.
▶옵션은 말 그대로 ‘선택권’을 사고 파는 상품입니다. 주식과 채권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거래되는 것과 달리 파생상품은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실물 자산을 기초로해서 그 가치 변화에 베팅을 합니다. 그래서 기초자산의 움직임에 따라(derived) 가치가 결정된다고 해서 파생(derivative) 상품입니다.
콜옵션을 매수(long)했다는 건 기초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콜옵션의 숏포지션(short position)은 무엇일까요? ‘팔아야할 의무’ 입니다. 권리와 의무가 만나 거래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풋옵션의 롱포지션은 기초자산을 ‘팔 수 있는 권리’입니다. 반대인 숏포지션은 ‘사야하는 의무’죠.
주식과 채권 등 전통자산이 (비록 공매도 등으로 일부 숏포지션이 있긴 하지만) ‘투자 = Investment’로, 가치 상승이 곧 수익입니다. 이에 반해 파생상품의 세계에서 투자는 ‘take a position’ 입니다. 가치가 올라가도 내가 숏 포지션을 잡고 있으면 손해가 날 수 있습니다.
주식과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만기’가 있단 것입니다. 주식은 기본적으로 영속적인 기업을 전제로 합니다. 물론 채권도 만기는 있죠. 하지만 파생상품의 만기와 채권의 만기는 영어 표기부터 다릅니다. 우리는 둘 다 ‘만기’라고 하지만 채권 만기는 Maturity고 옵션 같은 파생상품 만기는 Expiration입니다.
채권은 차곡차곡 시간이 쌓이고 무르익어서 마침내 기대했던 시간이 왔다는 느낌이죠. 하지만 옵션 만기는 펑!하고 거래 관계가 끝나고 사라지는 뉘앙스입니다.
왜 그럴까요? 채권은 기업이 원금과 이자를 약속하고 자본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입니다. 만기까지 별 탈 없이 기업이 굴러가면 약속한 금액을 주면 되고 기업과 투자자 모두 행복하게 헤어집니다.
하지만 옵션은 다릅니다. 위에 말씀드린대로 옵션 같은 파생상품은 ‘권리’와 ‘의무’가 만나서 이뤄지는 거래입니다. 때문에 만기가 되면 어느 한쪽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반대쪽은 딱 그만큼 이익을 얻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만약 내가 A주식을 100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샀다고 하죠. 누군가는 내게 A주식을 100원에 팔아야할 의무를 졌기 때문에 이 거래가 성립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기 때보니 A주식 주가가 150원이 됐다고 합시다. 나는 150원짜리 주식을 100원에 살 수 있으니 50원이 이익입니다. 하지만 내게 A주식을 100원에 팔아야할 누군가는 그만큼 손실입니다.
때문에 파생상품은 ‘제로 섬 게임’입니다. 이 점이 투자가 성공하면 모두가 행복한 주식·채권 같은 전통자산과 다릅니다.
▶주식과 채권 관련 뉴스 기사들을 보면 ‘내기를 걸었다’는 뜻의 베팅(bet)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투자(investment)죠. 하지만 파생상품 관련 기사를 잘 보시면 bet이란 표현을 흔히 씁니다. 도박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죠.
도박은 게임의 승자와 패자가 명확합니다. 또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있고 길지 않아서 즉각 승패를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을 더 오래하려면 그만큼 종잣돈도 두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명석한 두뇌와 정보력이 승패를 가릅니다. 도박은 기본적으로 확률게임이지만 순전히 운으로 결정되지 않죠.
옵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만기가 오면 승패가 딱 나뉩니다. 종잣돈 개념인 증거금을 계속 쌓아두지 않으면 판에 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정보력이 승패를 결정합니다.
제 기사에 나온 SEC 기소 직전 이뤄진 옵션 거래는 어떨까요?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법 거래라고 몰아세우고 싶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니 블룸버그도 ‘미스터리한 거래’라고 하지 ‘불법적인 거래’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둘의 차이는 참 모호하지만 결과는 천지차이죠.
혹시 지구상 다양한 정보를 꿰뚫고 있고 이를 해석해서 투자로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자부하며 옵션의 세계에 들어가겠다는 분 계실까요?
그렇다면 이 기사를 한번 보시죠. 2019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입니다. 인공위성으로 오일저장탱크의 그림자를 측정해 오일 가격 방향을 예측하고 베팅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무슨 말이죠?
저장탱크는 어마어마하게 크죠. 탱크의 지름은 바로 알 수 있고 각 탱크들의 위도를 감안해 그림자 길이를 측정해 계산하면 각 탱크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지름 곱하기 원주율 곱하기 높이) 그리고 현재 어느 정도 원유가 차 있는지는 탱크 뚜껑이 얼마나 내려왔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세계 주요 저장탱크를 실시간으로 인공위성으로 추적하면 글로벌 원유 공급량이 어떨지 바로바로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전세계 원유 저장 규모는 매주 수요일 발표됩니다. 일반 투자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공식 발표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실시간으로 이 정보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승패가 존재하는 게임에서 훨씬 유리합니다. 그런데 저 정보를 한두푼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저 기사는 2019년에 나온 것입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글로벌 자금은 몇 백조, 몇 천조 단위로 움직입니다. 그런 굵직한 자금들은 데이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필요한 데이터를 만들어 냅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저 기사를 보고 나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절대절대 파생상품 투기는 얼씬도 않겠단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얼마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도박 기술자분이 여러 기술을 보여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봤습니다. 본인이 이런 걸 보여주는 이유는 이렇게 다양한 기술들이 판을 치니 아예 낄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안 속겠지’, ‘나는 금방 알아채겠지’라는 무모한 자신감을 가진 분들이 많다고.
옵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물론 옵션을 기초자산을 가진 상태에서 헤지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는 지금 드린 말씀과는 상관없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내용은 순전한 투기 거래자(speculator)에게 해당합니다.
#헤럴드경제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