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추천
소록도·실존 스토리 기반 '생동감'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이 섬 위에서 꾸미고 계신 원장님의 천국은 어떻습니까. (중략) 형식만 있었을 뿐 원생들의 진정한 선택이 있을 수 없었던 그 마지막 정착지로서의 천국, (중략) 원장님이나 섬 바깥에서 이 섬을 천국이라고 말하게 될 바로 ‘그 사람들의 천국’일 뿐입니다”
나를 뺀 그들 만을 위한 천국, 그것은 위정자들의 ‘헌신’일까 아니면 대단한 ‘착각’일까. 지난 2008년에 타계한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한센병 환자를 수용한 소록도를 배경으로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랑의 문제를 심도 있게 탐구한, 이청준 문학의 요체로 알려진 작품이다.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은 최근 헤럴드경제와 만나 이 작품을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김 전경련 회장 대행은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소록도의 상황을 통해 권위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고 털어놨다.
‘당신들의 천국’은 현역 의무 장교인 조백헌 원장이 소록도에 부임하면서 시작한다. 이상욱 보건과장으로부터 섬 사람들은 일명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 환자들로, 발병 즉시 사회에서 격리돼 이 곳으로 오게 된다는 설명을 듣는다. 일반인과 거주 지역이 철조망으로 분리돼 있고 완치된다 해도 문둥병 환자로 낙인찍혀 차별을 받아 한(恨)스러운 삶을 산다는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 원장은 소록도를 이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고자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조 원장이 처음 시도한 일은 축구팀을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엔 별 관심이 없던 섬 사람들은 축구팀이 도 대회까지 올라가자 환호한다. 섬 사람들의 신임을 얻은 조 원장은 섬과 육지를 잇는 간척 사업을 계획한다. 섬 사람들의 복지와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황 장로와의 갈등과 자연재해, 상부의 압력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조 원장의 ‘소록도 천국 만들기’ 프로젝트는 결국 섬 사람들에게 자유를 갖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선택이 배제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되지 못했다. 내가 없어도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우리’가 아닌 ‘그들’을 위한 행복 만들기는 결국 섬 사람들을 동원해 개인적인 치적을 과시하는, ‘동상 세우기’와 다름 아니었다.
이 과장이 조 원장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처럼 천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지, 경제적 안정을 위해 정치적 자유를 포기했던, 소설의 배경이 된 1960~1970년대 한국 사회와 오버랩된다. 이와 함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 등 신(新) 권위주의가 팽배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함의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