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 모수 헤드셰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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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부산)=채상우 기자] ‘대체 돼지 췌장은 어디 있다는 거지...’
지난 1일 부산 파크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미쉐린 가이드 간담회. 이날 기자는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안성재(41) 모수(MOSU) 헤드셰프의 '부산 땅이 녹아든 바다의 감칠맛'이라는 요리를 맛봤다.
고등어와 돼지 췌장, 방아잎을 주재료로 사용했다고 했다. '돼지 췌장?' 머릿 속에 돼지곱창 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서빙된 음식의 비주얼은 당최 생각한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삼각형으로 잘린 고등어 살은 익은 듯 안 익은 듯 했고, 그 아래 방아잎과 오일로 만든 소스가 곁들여 있었다.
비리지 않을까 냄새부터 맡아봤다. 어떻게 비린 냄새를 잡았는지, 등푸른 생선의 취약점인 비린 냄새가 없었다. 생선살을 씹자 우리가 흔히 먹는 고등어구이 또는 고등어회와는 완전히 다른 식감이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에 감칠맛이 확 돌았다. 새콤한 오일 소스 때문인지 비린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맛의 풍요로움을 더했다. 무엇보다 은은한 감칠맛이 두고두고 생각날 정도로 입안을 감쌌다.
'그런데 돼지 췌장은?' 기자는 서빙하는 스태프를 부를까 망설였다. 재료로 사용했다던 돼지 췌장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히 촌스러워 보일까봐 망설이던 손을 내렸다.
돼지 췌장 요리 들어나봤나…"요리에 상상력을 넣어라"
치열한 요식업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젊은 나이에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이가 있다. 22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요리의 길에 들어서, 국내 최연소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모수(MOSU)의 안성재(41) 헤드셰프다.
부산에서 열린 미쉐린 가이드 기자간담회 이후 안 셰프를 만나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할 수 있는 비결을 들었다.
"돼지 췌장에 콩과 멸치 등을 넣고 발효시켜, 천연 감칠맛을 내는 재료를 뽑아내 음식에 맛을 냈습니다." 안 셰프가 요리에 대해 설명했다. 돼지 췌장을 요리에 직접 사용한 게 아니라, 돼지 췌장을 이용해 천연 감미료를 만들어 넣었다는 얘기다. 생각지도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개발할 때 늘 '다른 것은 무엇인가'라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레시피를 찾아보고, 그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합니다. 때로는 어릴 때의 기억과 추억에서 영감을 가지고 오기도 하고, 상상한 것들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맛있고 완성도 높고 뚜렷한 표현력을 가진 요리가 '모수 스타일'의 요리입니다."
안 셰프는 이런 기발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끝없는 고민과 계속되는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기존의 요리 기법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성공한 셰프로서의 자질"이라고 했다.
이는 스승인 코리 리 셰프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코리 리는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반 '베누'의 대표다. 안 셰프가 모수를 창업하기 전 조언을 얻기 위해 리 셰프를 찾아가 들은 말은 단 한마디였다. 바로 "너 마음대로 해."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했다. 안 셰프는 이를 두고 "스승께서 너가 하고픈 것을 마음 껏 펼쳐보라는 의미로 그런 말을 했다"고 말했다.
치열한 요식업계…"미슐랭만 보고 요리하지 말라"
"미슐랭만 보고 요리를 해서는 오히려 미슐랭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저도 미슐랭을 목표로 요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미슐랭만 목표로 하다 보면, 쉽게 지쳐버릴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미슐랭을 획득해도 부담감에 하고 싶은 일을 잘 못할 수 있고요."
또 다른 중요한 조언은 미슐랭에 너무 목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안 셰프는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이들이 '미슐랭'을 목표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고 했다. 이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지쳐 지속가능한 경영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미슐랭 식당으로 지정되고 나서도 문을 닫는 사례가 꽤나 있다. 현재 국내 선정된 미슐랭 식당 수는 누적 기준으로 56개다. 그 중 6분의 1에 해당한는 9개 식당이 문을 닫았다. 최근에는 미슐랭 3스타였던 '가온'이 영업중단에 들어가기도 했다. 낮은 수익률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외식업계는 너무 치열합니다." 안 셰프는 미슐랭도 살아남지 못할 만큼 레드오션이 된 요식업계 상황을 원인으로 꼽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주점을 제외한 음식점 수는 2017년 49만6915개에서 2021년 57만2250개로 약 15% 증가했다. 제 아무리 미슐랭 식당이라고 하더라도, 치열한 요식업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안 셰프는 또 "셰프의 이동이나 퀄리티의 향상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운영이 중단되거나 문을 닫기도 한다"며 "이는 미슐랭 식당이 아니어도 겪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명쾌한 해답은 없다. 다만 그는 "레스토랑 운영은 셰프의 의지, 방향성, 운영에 관한 모든 상황이 잘 맞아 떨어져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약과 먹고 눈물 흘린 영국인…"한식, 언젠가 메이저 된다"
아직은 세계 시장에서 주류에 오르지 못한 한식에 대한 고민도 깊다. 안 셰프는 한식이 반드시 세계 무대에서 메이저 반열에 오를 것이라 믿는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꼭 '전통 한식'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들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했다. 꼭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비빔밥·된장찌개 그대로를 앞세울 필요 없다는 말이다.
새롭게 변형되고 진화되는 한식을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를 해외에 내세워 인정받을 필요 있다는 게 안 셰프의 철학이다.
"'전통'이라는 단어에 매몰될 필요 있을까요. 제 희망은 10년 후 또는 20년 후 모수의 음식이 클래식 한식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셰프들이 세계시장에서 한식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결실을 거둘 시기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안 셰프의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모수의 약과를 먹은 영국인의 반응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신 약과 맛이 그리워 모수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만든 약과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나이 드신 영국인 여성이 이를 맛보고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들어보니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옛과자 맛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약과가 아예 다른 문화의 영국인에게 똑같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안 셰프는 한식의 세계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금의 정부 지원으로는 안됩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은 지원으로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셰프들이 활동하고, 한국 레스토랑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안 셰프는 2004년 요리를 시작해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이닝 레스토랑 '모수'를 창업했다. 모수는 한식 재료를 베이스로 하는 이노베이티브(창작) 장르의 요리를 추구한다. 2017년 서울에서 모수를 개업했다. 서울 모수는 2019년 미슐랭 1스타를 시작으로 올해 미슐랭 3스타를 취득했다. 현존하는 국내 유일 미슐랭 3스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