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실종된 김태희군 아버지 김홍문氏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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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안녕하세요, 맛있는 이야기 '미담(味談)'입니다.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아빠. 나 아빠랑 밥. 헤헤"
"얘는 꼭 밥 먹을 때 아빠 옆에서 먹으려고."
아들 태희가 싱글싱글 웃으며, 밥그릇을 들고 아빠 옆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엄마는 그런 태희에게, 웃음 섞인 핀잔을 줬다.
저녁 반찬은 태희가 제일 좋아하는 '고등어 구이'. 아빠는 가시를 발라 태희 밥 위에 얹어줬다. 다른 맛있는 반찬 다 제쳐두고 고등어 구이만 있으면, 밥 한 공기가 뚝딱이었다.
태희는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려울 정도의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출산할 때 병원에서 처치를 제대로 못해 아기가 나와야 할 때 나오지 못했다. 설상가상 입에 물까지 머금고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세상의 빛을 본 순간부터 태희는 장애를 안고 나왔다.
태희는 가족을 좋아했다. 형, 누나와 딱지치기를 하고 나른한 주말 오후엔 엄마랑 같이 라디오를 듣기 좋아했다. 무엇보다 아빠를 유독 좋아했다. 추운 겨울에도 오들오들 떨며, 퇴근하는 아버지를 대문 밖에서 기다렸다. 밥 먹을 때면 꼭 아빠 옆에 앉아 먹으려 했고, 잠을 잘 때에도 아빠 품에 잠들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은 아빠를 보고 싶다고 혼자서 아빠가 일하는 회사까지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집에서는 아이가 사라졌다며, 발칵 뒤집혔다. 아빠랑 손 잡고 집에 들어왔을 때 엄마는 퉁퉁 부은 눈으로 태희를 꾸짖었고, 태희는 그런 엄마 속도 모르고 아빠를 보며 웃어보였다.
1988년 4월 23일. 여느 때와 같이 따뜻한 봄날 오후였다.
엄마 박복순 씨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에 다녀온 사이 낮잠을 자고 있던 태희(당시 14살)가 보이지 않았다.
"여보, 태희 지금 거기 있어요?"
그날도 혹시나 태희가 아빠를 찾아 간 것은 아닐까 전화를 했다. 태희는 그곳에 없었다. 곧바로 실종 신고를 했다. 자주 가던 놀이터와 동네 문방구,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태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태희는 사라졌다.
"태희야 너를 찾기 위해 한평생 살아왔다, 아빠 미워 말아다오."
"밥 달라고 말도 못하는 아이인데, 밥은 잘 먹고 사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어요."
오는 25일 실종아동의 날을 앞두고 지난 11일 논현동 자택에서 만난 아버지 김홍문(90) 씨는 아들 걱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태희가 가장 좋아하던 반찬인 고등어 구이를 아직도 저녁상에 올리곤 한다. 어느날 갑자기 태희가 돌아오면, 예전처럼 아들 옆에 나란히 앉아 고등어 살을 발라 밥 위에 올려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다.
90이 된 노부(老父)는 이제 몸이 성하지 않다. 지병인 당뇨에 콩팥도 나빠져 잠깐 걷는 것도 힘이 든다. 최근에는 뇌에서 혹이 발견됐다. 거실 테이블에는 온갖 약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지금은 아들도 살아 있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지금 죽어도 상관 없어요. 하늘에 가면 아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아내는 3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치매를 앓았던 아내는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도 아들 태희만큼은 놓지 않았다. 아내는 "태희야 어디 있느냐"는 말을 읊조리고 눈을 감았다.
"어느날 태희가 꿈에 나왔어요. 먼저 간 자기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어요. 태희에게 다가갔는데, 저를 그냥 외면해버렸어요. 자기를 왜 찾지 않았느냐는 오해 때문인지. 그렇게 아빠를 좋아하던 애였는데, 어떻게 나를 외면할 수 있어요."
김씨의 주름진 눈가를 따라 눈물이 흘렀다. 훌쩍이던 울음소리는 금세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35년이 지났지만,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태희야 내가 너를 잊었다는 건 오해다. 아빠는 너를 찾으려고 죽는 날까지 노력하고 있다. 태희야 보고 싶었다. 이제 엄마랑 아빠랑 셋이 같이 살자."
김씨는 하늘에서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엇갈린 방범대원의 진술…무너져버린 결정적 단서
태희를 찾을 수 있었던 기회도 있었다. 군포에서 수족관을 운영하는 김모씨로부터 "화물차 밑에 아이가 있었는데, 말도 제대로 못하고 아무래도 아드님 같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아이를 방범대원에게 맡겼다. 방범대원은 아이를 봉고차에 태워 군포읍사무소(현재 군포시청)에 인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직실에서는 인계받은 사실이 없었다. 방범일지에도 그런 기록이 없었다. 김씨가 방범대원을 찾아갔지만, 끝내 방범대원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때 군포에 아이들에게 동냥을 시키는 '앵벌이'가 많았어요. 길 잃은 애들을 앵벌이에 팔아넘기기도 했는데, 태희가 그런 곳으로 간 거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그런 게 아니라면, 왜 방범대원이 그토록 진실을 말하지 않고 숨기는 건지 모르겠어요."
김씨는 이 문제를 당시 경기도경찰국에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결론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왜 무혐의인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어요. 경찰에게 제대로 이의도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그렇게 그냥 지나간 제 자신이 후회되요."
장기 실종 아동 70명…정부·사회 무관심 속에 묻히다
태희와 같이 오랜 시간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는 장기 실종아동 사건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 동안 발생된 실종아동 사건 중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70건에 달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현행 실종아동 정책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30년 전 딸 서희영(당시 10살) 양을 잃어버린 서기원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는 "장기 실종아동 수사를 관할 경찰서에서 전담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변경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수사 인력을 확대하고, 실종자 가족과 연계해 보다 체계적인 수사를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장기 미제 실종아동 수사는 지방청 형사과가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전담 수사관이 보통 2~3명 수준에, 1명이 홀로 수사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주요 장기 미제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청 차원에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 대표는 "현재는 주요 실종사건이라고 할지라도 경찰청 차원의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경찰청 컨트롤타워에서 주요 장기 미제 사건을 집중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종자가 발생하면, 그 가족의 삶은 완전히 망가진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부의 관심은 멀기만 하다.
서 대표는 "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기 실종자 1명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6억원 이상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은 연간 전체 10억원에 불과하다"며 "실종자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