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라면 1위’는 베트남인데…농심은 왜 美공장을 늘릴까 [푸드360]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말 그대로 농심이 미국에서 ‘대박’이 났습니다. 미국에서 ‘신라면’이 잘 팔린 덕분에 덩달아 1분기 영업이익(638억원)이 전년에 비해 85%가 늘었기 때문이죠. 15일 공시된 올해 1분기 실적에서는 미국법인의 매출이 40% 늘었고 영업이익(18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배가 됐습니다.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신동원 회장이 말했듯 농심은 “제3공장을 동부 지역에 검토 중”입니다. 사실 미국은 연간 1인당 라면 소비(15개)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농심은 왜 미국에 공장을 더 세우려는 걸까요.

서구권 라면 시장 1위…농심이 미국에 꽂힌 이유

농심은 미국 라면시장의 성장 잠재력에 집중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미국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는 셈이죠. 미국은 아시아를 제외한 서구권에서 라면 소비가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그동안 아시안 푸드로 인식돼 왔다는 점은 한계였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향후 연평균 5% 성장이 기대될 만큼 시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위로는 캐나다, 아래로는 브라질, 멕시코 등 남미 시장이 있어 장기적인 성장을 노려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미국 내 농심의 라면 시장점유율(23.3%)이 일본 토요스이산에 이어 2위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은 2017년 당시 2위였던 일본 닛신을 꺾고 20% 점유율을 돌파,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1인당 라면 1위’는 베트남인데…농심은 왜 美공장을 늘릴까 [푸드360]
올해 1분기 농심의 해외 매출액 [농심 제공]

농심은 미국에서 20년 가까이 라면을 생산해 오며 유통망을 늘려왔습니다. 2005년 6월 LA공장 가동을 시작으로 지난해 제2공장을 추가로 가동할 수 있다는 말은 미국에서 생산된 연간 8억5000만개의 라면이 갈 곳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농심의 베트남 매출은 미국 15% 수준…이유는?

올해 1분기 북미에서 농심 매출은 미국 1647억원, 캐나다 245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40.1%, 21.4% 늘었습니다. 여기에 2017년 월마트 4500여 곳에 신라면을 입점시키며 꾸준히 유통망을 구축해 온 점도 특징입니다. 1분기에는 미국 대형 채널인 샘스클럽(Sam's Club)에서 117%, 코스트코(Costco)에서 57%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결과로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럼 베트남은 어떨까요. 농심은 중국·미국에만 생산 법인을 두고 베트남·호주·캐나다에는 판매 법인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농심 베트남법인의 매출은 올 1분기 26억원으로, 미국법인의 15% 수준입니다. 전년 대비 매출이 28.3% 늘었지만 여전히 ▷호주(105억원) ▷일본(228억원) ▷중국(1011억원) 등 다른 해외법인에 비해 적습니다.

‘1인당 라면 1위’는 베트남인데…농심은 왜 美공장을 늘릴까 [푸드360]
왼쪽부터 농심의 미국 제2공장, 팔도의 베트남공장 [농심·팔도 제공]

“베트남식 라면은 좀 달라요…‘진입장벽’이 높아요”

세계라면협회 발표(2021년)에 따르면 베트남의 연간 라면 소비량이 1인당 87개로 1등이지만 농심에게 베트남의 장벽은 높은 편입니다. 식문화 차이, 탄탄한 자국 회사들이 이미 시장을 잡고 있다는 점 때문이죠. 국민소득이 높아져 구매력이 올라가고 한국 라면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끓여 먹는 라면 문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라면을 안 먹어 본 사람에게 인생의 첫 라면을 전파하는 개념이라면 베트남 시장에서는 ‘먹던 라면 대신 이 라면을 먹어보라’고 설득하는 접근이 필요한 것이죠.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손바닥보다 작은 80g 내외의 라면이 주를 이룹니다. 면은 육개장 사발면처럼 얇은데 컵라면처럼 그릇에 넣고 익혀 먹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베트남 라면 시장은 2020년 기준 에이스쿡(Acecook Vietnam)이 점유율 33.2%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에이스쿡은 일본 유명 종합상사인 마루베니가 현지 업체와 합작, 1993년 설립한 회사입니다. ▷2위 마산그룹(20.7%) ▷3위 유니벤(10.8%) ▷4위 아시아쿡(7.6%)인데 이들 업체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0%가 넘습니다.

‘1인당 라면 1위’는 베트남인데…농심은 왜 美공장을 늘릴까 [푸드360]
팔도 비나의 ‘즉석자장면’ 제품 [팔도 비나 홈페이지 캡처]

사실 국내 식품업체들은 동남아 시장 교두보로 베트남에 생산 기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베트남 키즈나 공장에서 만두, 김치 등 현지 생산을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죠. 지난해 베트남에서 연매출 4000억원을 돌파한 오리온은 730억원을 투자해 세 번째 공장을 베트남에 세우기로 했습니다.

오뚜기·팔도, 베트남 현지 공장으로 시장 개척 중

그렇다면 베트남에 라면 공장을 세운 한국 회사는 없는 걸까요. 베트남에 가장 빨리 직접 진출한 팔도가 있습니다. 팔도는 미국이 LA공장을 세운 다음해인 2006년 베트남법인 팔도 비나(PALDO VINA)을 설립했습니다. 2012년에 베트남 푸토(Phu Tho) 지역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식 브랜드 ‘코레노(Koreno)’를 통해 라면을 팔고 있습니다. 팔도는 베트남에서 2021년 61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전년(455억원) 대비 약 35% 성장한 수치죠.

‘1인당 라면 1위’는 베트남인데…농심은 왜 美공장을 늘릴까 [푸드360]
오뚜기 베트남 박닌공장 [오뚜기 제공]

팔도 관계자는 “팔도 비나는 K-문화 확산에 힘입어 한국식 끓여 먹는 라면인 코레노 시리즈를 바탕으로 새로운 맛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현지 트렌드에 맞춘 ‘점보코레노’, ‘즉석짜장면’ 등으로 제품 카테고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뚜기는 2018년 하노이에 박닌공장을 준공해서 진라면, 열라면 등을 생산 중입니다. 삼양식품의 경우 ‘한국 생산 제품(Made in Korea)’이라는 브랜딩을 위해 국내에서 수출하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고요. 라면 회사마다 수출 전략은 다르지만 한 마음으로 K-라면을 전파하는 데 여념이 없는 모습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