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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장인정신으로 높은 퀄리티의 한식을 만든다면, 소비자들은 한식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것입니다. 더 맛있고 많은 대중에게 인정받는 한식이 되는 길은 '장인정신'에서 시작됩니다."
미슐랭 2스타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가 한식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일반 대중이 가장 많이 접하는 1만원~5만원 이하 중간 가격대 한식 외식업계를 꼬집었다. 장인정신으로 중간 가격대 한식 퀄리티가 높아진다면, 소비자들은 더 많은 가치를 한식에 부여하고 결론적으로 다양성도 제고될 것으로 이 셰프는 기대하고 있다.
"한식은 저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왜 생긴걸까"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오프컬리에서 만난 이준 셰프는 세계적으로 대중화가 더딘 한식이 개선해야 할 점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미쉐린가이드가 이준 셰프의 요리 철학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였다.
이 셰프는 우선 '한식은 저렴해야만 한다'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똑같은 밀가루로 만들지만, 칼국수와 파스타의 가격 차이는 3배 이상입니다. 한식은 저렴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작용한 것이 여러 요인 중 하나입니다. 칼국수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고정관념이 때로는 한식이 더 높은 퀄리티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는다는 말입니다."
한식에 대한 고정관념은 '가격'뿐만이 아니다. 된장·고추장 등 우리가 소위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재료를 이용한 음식만을 '한식'이라고 고집하는 것도 문제다. 다양한 식재료와 문화를 접목해 한국식으로 재해석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즐기는 음식도 한식으로 보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古)조리서를 보면, 이름은 다르지만 '치즈'나 '버터', '햄' 등을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유럽처럼 체계화돼 전승되지 못했을 뿐이죠. 그런데 이런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만들면, 한국인들은 한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된장과 고추장 등 한국적으로 보이는 재료를 사용해야만 한식이라고 부르죠. 그러다보니 한식의 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제 치킨, 핫도그도 한식의 범위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한국인이 자연스럽게 먹고 이국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한식이 되는 것 아닐까요."
"선행돼야 할 것은 '맛'을 찾으려는 장인정신"
현재의 퀄리티에서 단순히 가격만을 올리자는 말이 아니다. 선행돼야 할 것은 요식업계가 '장인정신'을 가지고 한식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려 노력해야 한다. 중간 가격대 한식이 맛이 있어진다면, 소비자들도 자연스레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찾게될 것이라는 게 이 셰프의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아주 쉽게 자가제면 우동집을 찾을 수 있습니다. '면집이면 당연히 면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저렴한 가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는 전통과 문화가 있는 제면소에서 받아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공장에서 만들어진)제품을 씁니다. 맛의 변별력이 없어집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더 낮은 질의 제품을 찾아 쓸 것입니다.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도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낮은 가격대·중간 가격대·높은 가격대 한식이 각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게 된다면, 그만큼 한식의 다양성도 제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맛있고 가격은 비싸지 않은 가장 많은 대중이 사랑하는 한식업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이 중간 가격대 한식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 자리를 비슷한 가격대의 일식과 서양식이 차지하고 있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번화가를 중심으로 그런 경향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극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식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식집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고가의 '한식 다이닝'은 외국에서도 높게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캐쥬얼 한식'입니다. 당장 잘 되는 집만 봐도 최근 인기를 끈 유명한 식당들만 봐도 텐동·돈까스 등 일식 등이 대부분입니다."
"밥·면부터 제대로…한식의 '맛' 달라질 것"
이 셰프는 해결책으로 우선 기본적인 '맛'을 끌어 올리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단, '밥' 또는 '면' 등 기본이 되는 음식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손님 10명당 밥을 새로 지어 제공한다던가, 제대로 된 면을 뽑아서 제공한다든가. 그런 노력이 없다면 무엇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만 하더라도 그런 집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도 중간 가격대 한식에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을 아까워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되면, 한식집도 많아지고, 각자의 경쟁력을 찾기 위해 음식의 맛과 수준이 올라간다. 선순환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한식이 꼭 비싸져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음식을 제대로 만들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고객들의 입맛은 올라가고 한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 다시 한식집도 많아지게 되지 않을까요."
이준 셰프는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CIA를 졸업하고 유학 시절의 경험을 살려 프렌치와 이탈리안, 한식의 요소를 결합해 독창적인 서울 퀴진 ‘스와니예’를 선보였다. 스와니예는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창의적인 요리를 꾸준히 전개해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부터 5년째 미쉐린 수상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캐주얼 파스타 다이닝 ‘도우룸’과 유러피안 퀴진 ‘디어와일드’ 역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