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린이들이 많이 먹는 약품(유아동 해열제)와 식품(마시멜로, 김 등)이 정부로부터 판매중단 및 회수 조치를 받는 등 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이미지는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31개'

식약처로부터 올해 1월부터 이달 28일까지 판매중단·회수 조치된 '불량식품'의 수다. 지난해 전체 69개를 이미 절반 가까이 따라잡은 수치다. 의약품(56개)을 포함하면 87개에 달한다.

이 중에는 최근 문제가 된 유아용 해열제와 유기농 쌀과자, 아동용 청국장찌개, 마시멜로 등 어린 아이들을 위한 제품들이 상당수 포함돼 부모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방부제 기준 초과로 회수조치된 마시멜로 [식약처 제공]

불량식품이 늘어난 배경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대체 뭘까. 불량식품으로 불안해하는 부모들의 사례를 재구성하고, 전문가와 정부기관의 자료를 분석해 원인과 해법을 들여다봤다.

"우리 아이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세상 없나요"

지난 28일 식약처에 의해 판매중지·회수조치 된 재래김. [식품안전나라]

"아니, 이번엔 또 뭔데."

'식약처가 시중에 유통된 재래김 2종에 대해 인공감미료 초과사용 및 부정사용으로 회수조치를 내렸다고?"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던 수희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며칠 전에도 재래김과 김밥용 우엉이 문제가 됐다는 기사를 봤는데, 연이어 이런 보도가 나오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그냥 도시락을 싸줄걸, 괜히 손 많이 간다고 김밥을 사다 먹여서….'

지난주 6살 딸 세아가 유치원 현장학습을 간다길래 김밥을 사다 준 게 후회됐다. 직접 김과 우엉을 구입했다면, 문제가 되는 제품인지 확인이라도 할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속만 탄다.

수희는 얼마 전 유아동 해열제 '챔프'가 문제됐을 때도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하필 문제가 되는 제품을 먹였다. 뒤늦게 환불 요청을 했지만 민원이 몰려서인지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최근 갈변 현상이 발생한 어린이 해열제 ‘챔프시럽’에 대해 제조·판매·사용을 잠정 중지시켰다. 기준치가 넘는 미생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챔프시럽(성분 아세트아미노펜)' 중 부적합이 확인된 2개 제조번호가 '강제회수'로 전환되고, 나머지 제조번호의 '자발적 회수'가 권고됐다. 강제 회수 대상은 제조번호가 '2210043(사용기한 2024년 10월 18일)', '2210046(사용기한 2024년 10월 24)'인 제품으로, 성상 및 미생물한도 등 부적합 사유로 이번 조치가 취해졌다. [동아제약]

"콜록 콜록"

이번 달 내내 감기를 달고 사는 세아를 보니 더 속이 상해온다. 혹시 이것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코로나19 '나비효과', 불량식품 증가로 이어졌다

[게티이미지뱅크]

불량식품이 늘어나는 이유에는 생각지도 못한 배경이 있었다. 우리의 일상을 바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온라인이 식품의 주요 유통 채널이 되면서 불량식품 유통도 크게 늘었다"며 "특히, 온라인 소비를 크게 늘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불량식품 유통도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대형마트·백화점 등 기존의 유통망은 대기업에서 검증을 한 소규모 품종을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불량식품에 노출되는 가능성이 적었다"며 "최근에는 오픈마켓뿐 아니라 SNS 등에서도 생산자가 물건을 직접 판매하면서, 검증 단계가 축소돼 불량식품 유통도 늘었다"고 덧붙였다.

실제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식품의 온라인 유통시장은 2019년 약 17조2000억원에서 2022년 약 36조10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식품안전정보원]

2018년 1만4710건이었던 불량식품 소비자 신고는 지난해 2만1088건으로 4년 만에 43.3% 증가했다. 특히 2018~2019년 소비자 신고 증가량이 11.2%인데 반해,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이후 증가량이 28.8%에 달한다.

윤 교수는 불량식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 규제보다는 건강한 식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교수는 "결론적으로는 건강한 식품을 생산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를 위해서는 징벌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보다 경제적 지원을 통해 이를 달성해야 한다"며 "정부의 예산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잘못된 식약처 검사, '불량식품' 낙인 억울함도

식약처의 회수 대상으로 지정되었다가 철회된 ‘미니 카스테라’ 제품. [식품안전나라]

"불량식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식약처의 잘못된 검사 결과로 불량식품으로 낙인 찍혀 피해를 보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번복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제품들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한 대기업 품질관리팀 담당자의 하소연이다. 그는 "불량식품 신고가 늘면서,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기업 사례도 늘어만 간다"고 했다.

지난달 부적합한 방부제가 나왔다는 이유로 지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식약처로부터 판매중단 조치된 중국산 '미니 카스테라'는 지난 12일 재검 결과 '최종 적합'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불량식품' 낙오가 찍인 해당 제품은 매대에서 자리를 빼야 했다.

2018년 식약처는 세림현미가 만든 '라온현미유'는 벤초피렌이 초과 검출됐다며, 판매중단·회수조치를 했다. 세림현미는 행정소송 끝에 2019년 9월 정상판정을 받고 승소했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세림현미는 이 때문에 해당 제품을 전량 환불하고 전체 매출의 30% 가량 손실을 봤다고 한다.

식약처로부터 세균발육 ‘양성’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가, 번복해 정상 처분을 받은 청정원의 '런천미트' [사진=식약처]

같은 해 식약처는 청정원 런천미트에서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이 검출됐다며, 판매중단·회수 조치를 내렸다. 뒤늦게 세균이 생산과정에서는 유입될 수 없는 '일반 대장균'으로 밝혀졌다. 이에 식약처의 검사 과정에서 오염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식약처는 결국 '검출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며 백기를 들고 최종 '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런 문제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검출 결과 오류는 검사 장비와 장소 등 여러 변수에 의해 발생한다"며 "역추적도 어려워 검출 오류 원인을 파악하기도 사실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검출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이런 문제를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