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빚을 갚지 못해 법원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저축은행 등 제2 금융권의 대출금리가 법정최고금리(20%)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고, 심지어 건전성 강화를 위해 대출문까지 닫아 버리면서 아예 손을 들고 있는 채무자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특히, 개인회생 급증은 제2 금융권의 연체율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 이에 취약차주의 채무 상환능력을 제고시키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빚 갚지 못해 법원 찾았다…2월 개인회생 누적 접수 11년래 최고
13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누적 1만8954건을 기록했다. 두 달 새 1만9000여명에 가까운 이들이 빚을 갚지 못해 법원을 찾은 셈이다. 이는 통계가 집계돼 있는 11년 내 최고치이다. 지난해(1만2973건)와 비교했을 때에도 46.1% 급증했다.
월별로 보면 개인회생 신청자는 지난해 11월부터 급증했다. 지난해 10월 신청자 수는 7479명이었지만 대출금리가 본격적으로 7~8%대를 돌파한 11월에는 9085명으로 급증했다. 올 1월과 2월에는 각각 9218명, 9736명이 회생을 접수했다. 지난 2014년 처음 1만8000건대를 기록한 개인회생 접수 건수는 1만2000대로 내려앉았다가 올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개인회생은 과도한 채무로 인해 고통 받는 차주들을 위해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제도다. 향후 계속적으로 또는 반복해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근로자에 한해 대출 원금을 깎아주고, 파산을 막아주자는 취지다.
개인회생 왜 늘었나…일부선 제도 악용도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급증한 건 취약 차주들이 고금리의 직격탄을 받은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조달비용이 치솟으면서 2금융권 금융사들의 대출금리는 법정 최고금리인 20%에 육박했다. 저신용자들의 금리 부담이 늘어난 가운데 채권시장까지 악화하면서 일부 금융사는 대출 창구를 닫아버렸다. 흔히 말하는 ‘돌려막기’ 대출도 불가능해지자 저신용자들이 결국 개인회생까지 이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서울회생법원이 지난해 7월 가상자산 손실금을 변제금 총액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히면서 코인 ‘빚투족’들의 회생 신청도 급증했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된 29세 이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242건으로 전년 하반기(680건)보다 두 배 가량 뛰었다.
문제는 개인회생 제도를 악용하는 이들도 상당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일각에서는 채무 상환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무 조정을 받기 위해 갚지 않고 회생을 신청하는 경우도 종종 포착되고 있다. 국내 한 회생 전문 커뮤니티에는 “대출 안 갚고 시간 끌려고 한다” “코인으로 1억5000만원 대출받았는데 2000만원 남아있다. 월급은 꼬박꼬박 받긴 하는데 변제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제2 금융권 연체율도 덩달아 악화…대책 마련 시급
개인회생이 늘면서 제2 금융권의 연체율도 덩달아 악화되고 있다. 채무를 상환하지 않는 이들이 회생에 돌입하면, 저축은행은 해당 채권을 연체로 잡을 수밖에 없다. 이후 법원이 강제로 채무조정을 하면 저축은행이 받아야 할 채권은 깎이고 연체율은 올라가 대출 기관에 손해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저축은행 79곳의 총 연체율은 3.4%로 전년보다 0.9%포인트 급증했다.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2016년 5.8%를 기록한 뒤 매년 하락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6년만에 반등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개인회생이 급격히 늘어남으로써 저축은행은 원금도 깎아주고 이자도 못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대외적으론 연체율까지 올라가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취약차주의 채무부담을 동시에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회생이 늘어날수록 저축은행에게 손해로 돌아가는 게 사실”이라며 “회생에 앞서 차주들의 상환능력 여부를 꼼꼼히 심사하고 경제활동 의지를 북돋는게 더 중요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