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3·1절 “우리가 세계사 흐름 제대로 읽지 못하면 과거 불행 반복”
정부, 강제징용 韓 기업이 배상키로 최종안 제시… “尹 대통령의 결단”
7일 김영환 ‘기꺼이 친일파 되겠다’… 석동현 “식민지배 배상 악쓰는 나라 한국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새로운 국민의 나라 만세’를 삼창한 후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는 용감한 구호가 나온 것이다. 과거 공식적인 삼일절 삼창 구호는 ‘대한 독립 만세’였다. 윤석열 정부는 포스코 등 한국 기업들이 지불한 돈으로 피해자들에 보상하는 ‘강제징용 해법’을 내놨다. 윤 대통령은 오는 16일 일본을 방문한다. 국민 다수는 여전히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친일파’의 등장을 알린 인사는 김영환 충북도지사다. 김 지사는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내 무덤에도 침을 뱉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지사는 글에서 “나는 오늘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라며 “오늘 병자호란 남한산성 앞에서 삼전도 굴욕의 잔을 기꺼이 마시겠다”고 했다. 김 지사의 이 발언은 한국 기업들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하는 것을 옹호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삼전도의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라 한 것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진다.
김 지사는 또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의 애국심에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며 “통큰 결단은 불타는 애국심에서 온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결단은 지고도 이기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며 “진정 이기는 길은 굴육을 삼키면서 길을 걸을 때 열린다”고 덧붙였다. 김 지사의 ‘친일파가 되겠다’는 주장은 야당 및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을 엄호키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갤럽이 1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윤석열 정부가 최근 제시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한국기업들로부터 돈을 걷어 배상하겠다는 방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국민은 59%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조사에서 ‘일본 가해 기업이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기부한다면 배상한 것으로 보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배상한 것으로 보겠다’는 응답이 27%,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4% 였다. 9%는 답변을 유보했다.
또 한일관계 방향에 대해서도 ‘우리가 일부 양보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한 반면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서둘러 개선할 필요 없다’는 응답이 64% 였다. 특히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 등 과거사에 대해 반성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열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질문에 ‘일본 정부, 식민 지배 등 과거사 반성하고 있다’는 응답은 8%,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85%였다.
‘친일파’로 해석될만한 주장은 윤 대통령의 40년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 입에서도 나왔다. 석 처장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윤석열 정부의 외교부가 발표한 한·일 강제징용 해법에 마음 깊이 찬동한다”면서 “이제는, 마치 우리가 아직도 일제 식민지배하에 있어서 독립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좌파들의 비참한 인식에서 좀 탈피하자. 일본에게 반성이나 사죄 요구도 이제 좀 그만하자.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있나”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3자 배상’ 방식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엄호하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7일 “제3자 대위변제는 우리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민주당 아이디어다. 첫째는 국익, 둘째는 미래, 셋째는 경제 안보 차원”이라며 “사실 일종의 폭탄 돌리기나 마찬가지라는 표현을 썼는데 역대 정권에서 누구도 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 손대려고 하지 않고 방치되어 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에 “사실상 대일(對日) 항복 문서”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권의 굴욕적인 강제동원 배상안에 국민들의 분노가 뜨겁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는 대승적 결단, 한국주도 해결책이라는 궤변을 내놓고 있고 대통령실은 일본이 할 수 있는 한계치였다는 표현을 했는데, 도대체 일본이 뭘 했느냐. 기가 막힐 일”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입장에서는 최대의 승리이고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굴욕이자 수치”라며 “친일 매국정권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망국적 강제동원 배상안의 대가로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과 G7(주요 7개국) 초청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일본행 티켓을 위해서 피해자를 제물 삼는, 그리고 국민의 자존심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8일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리고 “윤석열, 박 진, 김태효, 석동현, 김영환”이라고 이름을 열거한 후, “당신들은 미쳤다. 당신들은 우리 국민에게 너무도 깊은 모멸감을 주었다. 역사로부터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한편 윤 대통령은 오는 16일부터 1박2일간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다. 한국 정부가 일본 측 입장을 수용한 일제 강제동원(징용) 배상안을 발표한 지 10일 만이다. 정치권에선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해 진전된 입장이 나오지 않으면 일본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강제징용 배상안 발표의 후폭풍이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