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동의안·특검, 민주당과 차별화
‘당파성’보단 ‘공익 명분’ 내세운 성과
존재감 불씨 이어갈 ‘정책 경쟁력’ 필요
새 국면 맞은 ‘K칩스법’ , 정책 대응 주목
‘3만원 프리패스제’ 정책대안 성과 관건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이어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과 김건희 특검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뚜렷한 차별화를 보이면서다. 거대 양당의 정쟁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며 그간 정의당의 외연 확대를 가로 막았던 ‘민주당 2중대’ 프레임을 극복할 발판을 다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대선 참패 이후 당이 생사기로에 놓이면서 재창당 수준의 ‘당 혁신’을 추진 중인 정의당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국면의 덕을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대 양당의 정치적 공방이 극에 치닫는 상황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정치적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6석에 불과한 의석수의 한계에도 당파성이 아닌 공익적 명분을 앞세운 정무적 판단이 관심을 받고 있다는 해석이다.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 패배 이후 보이지 않던 정의당의 존재감이 최근에 드러나고 있다”며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정국을 거치며 무게 중심을 잘 잡은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의 정쟁 국면에서 정치적 균형감을 유지하며 존재감의 불씨를 살린 정의당의 향후 과제로는 ‘정책 경쟁력’이 꼽힌다. 3월 임시국회가 열린 상황에서도 거대 양당의 정쟁이 극에 치달으며 경기침체 대응, 복지사각 지대 해소 등의 당면한 민생문제 해결과 기후위기, 인구위기 등 장기적 관점에서 제도를 개선할 입법 조치는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의당이 정책적 대안정당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최근에 되살린 존재감을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은 정의당의 ‘정책적 판단’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민주당의 입장 선회로 거대 양당의 정책 공조 가능성이 높아진 ‘K칩스법’에 대해 정의당도 제도권 정당으로서 명확한 입장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입장에 더해 최근의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면밀한 진단을 덧붙여 변화된 ‘입법 국면’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오는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를 열어 대기업 등 반도체 시설투자 추가세제지원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대한 합의를 시도한다. 이 자리에서 기존 정부안보다 세액 공제 혜택을 늘린 여야 합의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은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기술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중견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현행 16%에서 25%로 각각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안대로 통과되면 올해 한시적으로 4%인 신규 투자 추가공제율을 10%로 늘리기 때문에 최대 25∼35% 공제가 가능하다.
이는 지난해 연말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세제개편안에 따라 올해부터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이 대기업 8%·중소기업 16%로 한 차례 확대된 것에 7∼9% 포인트(p)를 추가 감면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 감세'에 비판적인 민주당은 이미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을 시행 한 달여 만에 뒤집으려 한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이 정부 측 추가세액공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개정안 심사에 속도가 붙게 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 반도체 업계를 견제하기 위한 규제를 내놓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피해를 입을 상황에 놓인 게 결정적이다. 미국 정부는 자국에 투자하기로 한 반도체 기업이 정부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일정 기준 이상 초과수익 반납, 10년간 중국 투자 금지 등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주요국 사이에 자국중심주의적 반도체 산업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인 셈이다.
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세액공제 폭과 관련해 "개별 산업 특성에 따라서 어느 정도 지원하는 게 맞는지는 조세특례제한법에 담아야 한다"며 "반도체 시설 관련 투자의 세액공제를 8%에서 15%로 확대하는 정부안과 함께 다룰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일 역시 중요한 과제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직접 정부에 제안한 ‘대중교통 월 3만원 프리패스제(3만원 프리패스제)’가 대표적인 예다. 3개월 한시적으로 월 1만 원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무제한 이용하는 통합정기권을 도입하고, 이후 3만원 통합정기권 제도를 정착시키자는 ‘정책 대안’이다.
3만원 프리패스제 도입을 위한 경제적·정치적 명분은 충분하다. 금리, 물가 상승으로 서민의 경제적 부담이 높아지는 환경이다. 정부 재정문제를 내세운 반론에 대해서는 교통시설특별회계(2021년 21조원)를 공공교통특별회계로 전환해 재원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논리로 대응할 수 있다. 자가용 이용자에게나 혜택이 돌아가는 유류세 감면, 자동차 개별소비세 감면 등에 쓰일 예산을 줄이는 방안도 제시할 수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조치라는 측면도 설득력이 높다.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아질수록 높아질수록 에너지 절감, 교통 혼잡 완화, 환경 오염원 배출 감소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독일은 오는 5월 1일부터 월 49유로(약 6만7000원)에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도입하기로 했다.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던 지난해 5~8월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9유로(약 1만2000원) 티켓이 자가용 이용과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고 호응하는 시민들이 많자 49유로 티켓을 상시 운영키로 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1095유로(약 151만원)에 1년 동안 자국 내 모든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클라이마티켓(기후이용권)을 도입했다.
‘3만원 프리패스제’ 도입을 공론화시키는 일에 정의당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면 군소정당의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대안 정당’의 입지를 다질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는 “서민들은 줄줄이 오르고 있는 공공요금에 한숨이 나온다. 가장 심각한 것은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비 인상”이라며 “서민의 발이 되어주는 대중교통, 기후위기 시대 적극 행정이 필요한 대중교통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