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 ‘이자장사’ 논란에 대한 대응으로 과점체계 해소를 지시하며, 은행권에 지각 변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당국은 신규은행 인가 등 경쟁자를 늘려 과점 체제를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업권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출범 6년 차를 맞은 인터넷은행도 흠집 내지 못한 5대 은행의 과점 체제를 또 다른 ‘메기’ 투입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과점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문제 해결과는 어긋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인뱅 출범도 ‘계란에 바위치기’…5대 은행 점유율 되레 늘었다
5일 금융감독원 금융정보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국내 점유율은 총여신 63%, 총수신 73%, 총자산 65%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추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치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5대 은행의 총여신 비중은 62~64%, 총수신 비중은 73~76%, 총자산 비중은 62~65%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7년 인터넷은행 출범 이후에도 은행의 과점 체제는 여전했다. 지난해 인터넷은행의 총자산 비중은 2%를 간신히 넘기는 데 그쳤다. 총여신 비중은 2.7%, 총수신 비중은 채 2%에도 미치지 못했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의 총수신 비중은 62.7%에서 63%로 소폭 상승했으며, 총자산 비중 또한 62%에서 65%로 3%포인트가량 늘었다.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은행권이 이자장사로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돈잔치’ 논란이 불거지자, 윤 대통령까지 나서 ‘5대 은행 과점 체제’를 원인으로 지적하면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관련 TF를 열고 신규은행 추가 인가, 비은행의 은행업 진출 등 신규플레이어 진입을 토대로 한 경쟁촉진 논의를 진행키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은행 출범에도 흔들리지 않은 과점 체제에서 경쟁자 투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차라리 경쟁 촉진을 위해서는 지방은행·인터넷은행 등 기존 플레이어에 대한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지방은행의 은행권 점유율은 총여신 7.5%, 총수신 8.0%, 총자산 6.8%로 최근 5년 새 각각 1%포인트가량 줄었다. 지방은행들은 60%로 책정된 중소기업 대출 공급 기준에 따라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금리대출 공급 의무에 따른 대손충당금 등 비용 부담이 늘어 주요 은행과의 경쟁이 힘들다는 인터넷은행의 불만도 꾸준하다.
그러나 기존 플레이어에 대한 규제 완화 논의는 진척 가능성이 크지 않다. 지방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의무는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중 하나다. 규제 완화 시 되레 지역경제 침체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 대출 의무 완화 또한 당초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만큼, 무작정 완화책을 펼칠 수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尹 한마디에 ‘과점 체제’ 개선…전문가들 “실효성 있는 정책에 집중해야”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점 체제’ 문제의식 자체가 요점을 어긋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은행 때리기’의 시작은 고금리를 틈타 막대한 실적을 거뒀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이에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인하 압박, 성과급 산정체계 검토 등 대응책을 내놨다. 하지만 “은행업의 과점 폐해가 크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주요 논의는 과점 체제 개편을 중심으로 전환됐다.
무엇보다 이같은 문제의 원인이 ‘과점’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은행에 비해 국내 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 등이 적다는 불만이 나오는 상황, 과점으로 인한 수익 창출을 문제의식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의문이 크다”며 “예대마진에 문제가 있다면 5대 은행 간 담합에 대한 증거가 나왔다거나, 과거에 비해 소비자 후생이 줄었다는 식의 실증적인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 되레 과점 비율이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위원회 산하 자문기관인 금융산업경쟁도평가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은행업 시장 집중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중하위권에 속했다. 총자산 상위 3개 사의 점유율 합산 수치(CR3)를 기준으로 시장 집중도는 일반은행 기준 23위, 시중은행 기준 18위로 나타났다.
신규 경쟁자를 투입하더라도, 균열을 낼 수 있는 주체가 등장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인터넷은행 또한 체제에 균열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요 은행과 경쟁할 수 있는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곳은 은행권 진입이 불가능한 산업자본밖에 없다”며 “경쟁 촉진으로 문제를 풀고자 한다면, 가산금리 규제나 대환 플랫폼 구축 등 세부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면서 단기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정책 역행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실제 현 은행권의 과점 체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실 은행을 정리하고, 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정부가 주도한 결과다. 안 교수는 “은행의 부실은 국가 경제를 마비시킬 정도로 큰 문제인데, 무작정 시장 경쟁을 위해 규제를 바꾸거나 라이센스를 남발하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라며 “담합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선뜻 건드릴 수 없는 복잡한 환경에서 뚜렷한 실증도 없이 체제를 손본다는 건 쉬운 얘기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