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 혹은 반명’ 피아구분 후 침묵했나
의도적 입 단속…‘뒤통수 때리기’ 비난도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 이탈표’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도부가 연일 “압도적 부결”을 호언장담한 가운데 큰 표차의 부결을 예상하기가 더 쉬웠다.
그러나 결과는 이와 정반대의 ‘가까스로 부결’. 지도부와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의 당혹감이 얼마나 큰지는 표결 결과 발표 직후 쏟아진 격앙된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할만 하다.
반면 대거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비이재명)계 표정은 담담하다. 이들은 어떻게든 ‘단일대오’를 이뤄 압도적 부결을 형성하려는 지도부 기류에 결국 막판 ‘침묵’을 택했다. 오히려 “물밑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당을 향한 냉정한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앞서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은 재석 297명 중 찬성 139표, 반대 138표, 무효 11표, 기권 9표로 부결됐다.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1표 많지만 국회법상 ‘재적 과반 참석, 과반 찬성’ 원칙에 따라 체포동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결과를 두고 정치권은 민주당에서 최소 31표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소속 의원 169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했음에도 반대표가 138표에 그치면서 31표가 찬성, 무효, 또는 기권표로 흘러갔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민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과 부결을 주장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을 민주당의 ‘아군’으로 봤을 때 이탈표 계산은 최대 37~38표까지 늘어나게 된다. 특히 20표에 육박한 무효·기권표가 주목됐다. 찬성 이탈표와 더불어 무효·기권표까지 ‘조직적’ 표결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배경에는 비명계의 ‘입 단속’이 있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재선의원은 본지에 “며칠 전까지는 비명계 의원들 사이 28~30표 등 구체적인 이탈표 숫자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요 며칠 사이는 그런 이야기가 쑥 들어가서 ‘이번엔 부결시키자’는 것으로 정리된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 부결을 주장했던 나에게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비명계 일각에서 이른바 ‘피아식별’을 통해 의원 투표 성향을 가르고, 그들끼리의 소통을 통해 이 같은 결과를 유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로 비명계 교감 하에 이루어진 표결이라고 보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당내 비주류 비명계로 꼽히는 이상민 의원도 28일 오전 CBS라디오에서 “그 정도의 (이탈표) 숫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저변에 흐르는 (찬성표) 분위기를 지도부가 잘 파악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어 이탈표 규모에 대해 “그 정도 숫자는 그냥 우연히 합쳐져서 나온 숫자가 아니고, 어느정도 삼삼오오 교감이 이뤄진 것은 맞을 것”이라면서 “누구 한두 사람이 전체적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과대하게 해석하는 것일 테지만 의원들이 자신의 생각이 있고, 또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얻은 생각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단순 합산된 결과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명계에선 전날 표결 결과로 사실상 이 대표의 리더십이 뿌리째 흔들렸다며 대표직 사퇴 요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일단 당이 한번은 막아주지만 이젠 이 대표가 결단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알려준 투표”라면서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최근 의원총회에서 비명계 설훈 의원이 “압도적 부결”을 강조했음에도 다수 이탈표가 나온 것을 두고는 “기획된 뒤통수 때리기”라는 비난 여론도 높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부결을 주장했던 비명계 의원들이 일종의 트릭(속임수)을 한 것”이라며 “그건 해서는 안 되는 정치를 한 것”이라고 비판 강도를 높였다.
이 대표는 우선 민주당 의원 20%에 해당하는 30여 명이 전날 ‘부결 대오’에서 이탈한 근본 원인은 소통 부족에 있었다고 보고 당내 스킨십 강화에 더 치중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전날 날 체포동의안 표결 후 취재진에게 “당내와 좀 더 소통하고, 많은 의견을 수렴해 힘을 모아 윤석열 독재정권의 검사 독재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제 표결 결과는, 당 대표에게 더 다양하고 촘촘한 소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대표는 전날 지도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서도 몇몇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소통 강화 필요성이 강조됐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