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종합건축사사무소 천국천 대표 인터뷰
‘만천명월 예술인가(家)’ 설계
“국적 불명의 한옥이 아닌 우리다운 것으로”
한옥의 비례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애써
한옥 벽면처럼 지대석-사고석-전벽돌 배치
4층에는 정통한옥을 구현해 올려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 “한옥은 계승 발전이 아닌 한옥이라는 존재만으로 충분히 가치를 지닌 유산입니다. 자연과의 조화, 친환경 건축 등 한옥은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한인종합건축사사무소 사무실에서 만난 천국천 대표에게 한옥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 그 자체다.
과거 조선시대가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을 살고 있기에 천 대표는 갖가지 규제 환경 속에서 ‘한옥다운 한옥’을 짓기 위해 역사적 배경과 입지 등 다양한 요소를 퍼즐처럼 놓고 하나하나 짜 맞춰 나간다. 이를 소홀히 하다가는 고층 건물에 기와만 올린 ‘괴물 한옥’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천 대표는 문화시설 및 한옥 등 목조건축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목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건축현장을 놀이터처럼 돌아다녔다. 아버지가 망치를 챙기면 어린 천 대표는 못가방을 들고 현장으로 떠나곤 했다.
어릴 때부터 목조건축물에 익숙했던 그였기에 건축사의 실무 수련도 문화재 건축을 설계하는 곳에서 받았다. 이어서는 문화재사무소에서 10여년을 근무했다. 이곳에서 정통으로 한옥을 배웠다. 그래서 한옥 건축은 그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이런 천 대표에게 최근의 한옥은 안타까움의 대상이다. 상업적 용도로 쓰이며 정체성이 사라져 가고 있어서다.
“결코 현대한옥의 다양성과 진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는 변하고 그에 맞게 건축도 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한옥 형식의 카페들도) 상업적 용도의 한옥으로서의 정체성을 논하기보다는 한옥의 보급과 홍보에 매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현대한옥 중 하나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이처럼 그는 현대한옥의 순기능을 분명 인정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고 했다. 그는 “전통건축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면 국적 불명의 한옥이 아닌 우리의 것을 알고 우리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즉 부위별로 적재적소에 맞는 건축 재료를 접목해야지, 무조건 현대기술을 접목한다고 해 성능이 개선되거나 편리함이 나아지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이달 1일 문을 연 금천구 시흥동 ‘만천명월 예술인가(家)’는 한옥에 대한 천 대표의 철학이 배어든 건축물이다. 만천명월 예술인家는 예술인 네트워킹 및 회의공간, 공유주방, 소규모 연습실 등을 갖춘 공간이다. 지하 1층~지상 4층으로 지어진 건물은 옛 시흥행궁 터인 시흥동 은행나무로에 있다. 시흥 행궁은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화성 연무대까지 이어진 능행차 때 쉬기 위해 1794년 지어진 건축물이다.
금천구청에서 낸 공모에 참여한 천 대표는 입지의 역사적 배경까지도 고려하며 건물의 모양을 고민했다.
입지의 특성,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그가 고안해 낸 것이 우리 전통건축물 중 하나인 성곽 양식이다. 천 대표는 “당시 구청에서 토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건축물을 요구했기에 성곽 위 옥상에 정자를 세우는 형태를 계획해 설계 공모를 냈다”며 “이후 보다 많은 용적률을 활용하기 위해 4층에 목조건축물을 세우기를 원했고 결국 한옥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현대한옥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체성은 몸체부와 지붕부의 비례다. 그리고 이질감의 최소화다. 한옥 고유의 비례가 적절할 때 건물이 기형적으로 보이지 않고 한옥 본연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성곽의 모티브를 가지고 한옥의 비례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애썼다. 이를 위해 2~3층 부분인 성곽 부분에 한옥의 벽면 모양에서도 나타나는 화방벽(중방 이하에 기둥보다 튀어나오도록 두껍게 벽을 쌓아 방화나 빗물에 강하도록 하는 방식) 패턴을 넣었다.
1층은 필로티 구조로, 성곽 부분은 2층부터 시작한다. 지면의 빗물·방화와 관련이 없음에도 아래쪽 기단부에 지대석을 놓고 그 위에 사고석을 놓은 뒤 그다음 전벽돌을 배치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전통한옥 입면의 삼분법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는 아래쪽에 큰 자재를 놓고 윗부분에는 보다 작은 외장재를 넣어 보는 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1층은 필로티 구조를 사용했다. 그는 현대건축 규제를 하나하나 따르면서도 한옥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공간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이 공간의 쓰임이 예술인들의 네트워킹 및 회의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 이를 위해 1층 주차장 반대편에는 한옥에서나 보일법한 툇마루 공간을 마련했다. 보통 열린 공간의 툇마루와 달리 콘크리트벽에 둘러싸인 공간으로 외부 공간과의 구분을 뒀다.
그는 예술인들의 휴게공간이 성곽 양식을 사용해 답답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도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곽 외부창에 세살창을 사용해 한층 따뜻한 느낌을 줬다. 차가운 성질의 성곽과 따뜻한 느낌의 한옥을 적절히 어울리게 하는데 초점을 둔 부분이다.
4층은 전통한옥을 올렸다. 특히 지붕을 한옥 특유의 버선코 모양으로 설계한 덕에 한옥 느낌이 물씬난다. 4층에도 다도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툇마루공간을 추가로 하나 더 만들었다. 이 공간에 앉아 차를 마시게 되면 ‘한옥’과 ‘고층뷰’라는 결코 양립하기 어려울 것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는 최근 한옥커피숍들처럼 전통유리창을 사용해 만들 수 있었지만 4층만큼은 전통한옥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옥 건축물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함이다.
과거 6년여간 서울시 한옥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낸 천 대표는 한옥 건축의 대전제는 ‘전통한옥의 보존’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현재 북촌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도 한옥 자체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수백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주거의 ‘명품’과 같은 한옥주택을 편의성에만 초점을 둔다면 자칫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천 대표는 한옥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아파트에서도 여러 부분 공간과 설비시스템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옥 좌식문화에서 발달해온 온돌뿐만 아니라 전통한옥의 공간 역시 현대건축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아파트의 평면을 떠올려보면 과거 마당과 대청 중심의 한옥 공간이 다층 건축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한국의 아파트에도 거실을 중심으로 각 실이 배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도 한옥의 문화가 깊숙이 들어가 있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