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열린 기습 독주회

1분도 안돼 전석 매진 사례

‘변주곡’ 주제 헨델ㆍ브람스ㆍ슈만

앙코르로 쇼팽 ‘스케르초 2번’

객석 전체 기립박수 ‘진풍경’

피아니스트 조성진 [성남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클래식 공연장에선 보기 힘든 명장면이 내내 연출됐다. 압권은 공연 말미였다. 쇼팽의 ‘스케르초 2번 Bb단조, Op.31’을 두 번째 앙코르로 연주하자, 객석에선 탄식과 비명이 터져나왔다. 두 시간 이어진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스케르초 2번의 마지막 건반이 눌리자 함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나왔다. 객석의 98% 이상의 관객이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는 공연장의 풍경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기습’이자 ‘깜짝’ 공연이었다. 낌새도 없이 공개된 ‘클래식계의 슈퍼스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피아노 리사이틀이다. 전국에서 딱 두 곳, 성남문화재단과 부산문화회관만 선택받은 이번 리사이틀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예매 전쟁이었다.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은 1102석의 전체 좌석 중 시야제한석 20~30석을 제외하고 합창석까지 모두 오픈했다. 성남문화재단에 따르면 티켓은 불과 1분도 안돼 매진, 클래식 스타의 위엄을 확인했다. 부산문화회관의 공연은 티켓 오픈 4분 만에 매진됐다.

이번 공연은 시작 전부터 기대가 높았다. 조성진은 지난 8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관객을 만났지만, 국내 독주회는 1년 만에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남아트센터에서의 공연은 2년 만이다. 티켓 가격도 부담이 없었다. 향후 예정돼있는 조성진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 티켓 가격이 무려 40만원에 달하는 것과 달리 성남아트센터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기회 제공 등을 이유 삼아 최고 10만원대 초반 가격이 형성돼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성남문화재단 제공]

공연의 주제는 ‘변주곡’이었다. 헨델로 시작해 브람스, 슈만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이다. 연주회에선 조성진의 뛰어난 기교와 풍부한 감성을 두루 만날 수 있었다.

첫 곡 헨델의 건반 모음곡 5번 E장조 HWV 430에서 조성진은 차분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써내려가는 연주를 들려뒀다.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던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2022년에도 온전히 재현됐다. 그는 피아노의 페달을 밟지 않았고, 건반을 ‘치는 것’이 아닌 건반 위로 손가락을 내려놓으며 우아하고 온건한 위로를 건넸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1부에서 들려준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Op.24’와 2부에서 선보인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Op.13이었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이 두 곡은 변주곡인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내는 곡”이라며 “변주곡은 단순히 템포나 화성이 변하는 차원을 넘어 캐릭터 그 자체가 변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연주를 들려줬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성남문화재단 제공]

두 개의 변주곡을 연주하는 조성진은 ‘변주곡을 끊임없이 변주’했다. 자유로운 격정을 오가니 그의 연주는 관객을 다른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에선 이전엔 볼 수 없던 조성진의 뜨거운 격정을 만나게 됐다.

허 평론가는 특히 “변주곡임을 고려해서 그 변주들끼리의 연결고리들 까지도 그 흐름을 생각한 연주처럼 보였다”며 “두 곡 모두 성부들이 곳곳에 흩어져서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는데, 조성진은 이 성부들의 관계를 맺어줘 모든 성부가 유의미하게 들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다른 차원의 성부가 하나의 차원에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교향적 연습곡’의 연주 내내 조성진은 스스로 수백개의 음표가 됐다. 온몸으로 모든 격렬한 감정들을 연주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카타르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모든 행위가 하나의 음악극처럼 보였다. 이전엔 보기 힘들었던 조성진의 강렬한 감정 표현이 음악 내내 흘렀고, 골인 지점으로 향해갈수록 긴장감을 만들다 극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그 과정이 곡의 제목에 걸맞게 피아노 한 대의 연주로 오케스트라처럼 풍성하고 다채로운 음색이 나왔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성남문화재단 제공]

허 평론가는 “성부를 잘 컨트롤하고, 코드를 균형 잡히게 연주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효과가 나온 것”이라며 “화성의 균형감 등 기술적인 부분이 무척 훌륭했고, 곡의 본질에 다가간 연주였다”고 평했다.

앙코르에서도 조성진은 관객의 만족도를 100% 끌어올렸다. 헨델의 ‘사라방드’에 이어 ‘초팽’(조성진+쇼팽의 합성어로 붙은 별칭)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스케르초 2번까지 완벽히 짜여진 공연 한 편을 만들었다. 앙코르까지 모든 열정을 쏟아낸 조성진은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듯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안녕’을 건네며 무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