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부쩍 증권 뉴스에 많이 등장하는 게 바로 자사주 매입(stock buyback 혹은 repurchase)입니다. 6~7년 전부터 배당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이제 자사주까지 신문기사에 많이 언급되는 걸 보니 주주가치 제고, 주주환원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사주 관련 기사들을 보다보면 조금 씁쓸한 부분도 있고, 크게 지장은 없지만 엄밀히 말해 틀린 부분들도 있어서 간략히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가장 먼저, 자사주 매입은 회사(법인)가 회삿돈으로 자기 회사 주식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오너나 경영진, 주요 임원이 회사 주식을 사들인 걸 자사주 매입 혹은 자기주식 매입이라고 표현하면 틀린 것입니다. 그건 그냥 여타 주식거래와 동일하게 해당 회사 주식을 산 것입니다.
아마도 표현의 편리를 위해, 또 오너나 경영진 관련 뉴스의 임팩트를 높이기 위해 관례처럼 써온 게 아닐까 추측됩니다.
▶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자사주 '소각'입니다.
그 전에 일단 자사주 매입 목적(영향)을 살펴보죠. 대략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EPS증대 ▷기업 자신감 공표 ▷스톡옵션 대비 ▷경영권 방어.
자사주를 사들이면 유통주식수(shares outstanding)가 줄어 들어 EPS(주당순이익)가 높아집니다. 한 마디로 각 주주에게 돌아갈 몫이 더 커진다는 것이니 좋은 소식이죠. EPS가 높아지면 PER(주가수익비율) 같은 주요 투자지표도 개선됩니다. 기업의 상대가치 평가에 유리해지죠.
숫자로 드러나진 않지만 더 의미 있는 건 시그널(신호) 효과입니다. 기업 경영진은 해당 기업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자기네 주식을 산다? 경영진의 자신감으로 시장은 받아들입니다. 똑같은 중국집이라도 주방장이 점심 때마다 자기네 자장면 먹고 있으면 더 신뢰가 가잖아요.
또 다른 이유는 임직원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할 때를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것입니다. 자사주를 갖고 있다 이걸로 스톡옵션을 주면 간편하죠.
마지막으로, 기업경영권 방어 목적입니다. 자사주엔 의결권이 없습니다. 배당도 받지 못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주식이 아닌 셈입니다. 대신 경영권 위협을 받을 때 우호세력(백기사·white knight)에게 자사주를 넘겨 우호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사주로 스톡옵션을 주거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세력에 넘겨 다시 시장에 풀리면 회사의 총 발행주식수는 그만큼 늘어납니다. 유상증자와 같은 효과입니다. 기존 주주 입장에선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자사주 매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소각'인지 아닌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따집니다. 자사주를 매입해도 다시 시장에 나오면 별무소용이니 완전히 태워 없애버리는 것까지 지켜봐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각'이란 게 블룸버그나 WSJ 같은 외신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제 짧은 기자생활과 부족한 공부량 탓일 수 있지만, 주주가치 환원의 대장격인 애플 같은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관련 기사나 보고서에 소각 여부를 따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아예 '소각'이란 표현 자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말씀드렸다시피 자사주는 취득하는 즉시 주식으로써의 모든 권리가 소멸됩니다. 주식이 아닌 휴짓조각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당연히 같습니다. 그러니깐 소각이란 용어가 따로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소각 여부를 다르게 대하는 건 경영권 방어 목적에 따른 자사주 활용의 중요도 차이 때문입니다.
미국에선 신주발행이 자유롭습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특정 우호세력에게 신주를 발행해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때문에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쓸 필요도 없고 실제로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닙니다. 1970~8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쓰곤 했다네요. 특히 그린메일(기업사냥꾼이 기업경영진에게 해당 기업 주식을 고가에 되사도록 협박하는 것)이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입이 대응장치로 쓰였습니다. 굿이어타이어(1986년), 비아콤(1986년), 월트디즈니(1984년) 사례 등이 그린메일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그린메일 탓에 자사주 매입이 늘어나자 미국의 주요 주들은 아예 그린메일을 제한하는 법과 규제를 만들었습니다. 또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면서 대응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은 그래서 다시 주주가치 환원이란 본래의 역할에 충실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자사주 매입 효과를 논할 때 경영권 방어 부분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안하고 있고 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스톡옵션 매물 출회에 따른 주주가치 희석은, 신경은 쓰이지만 그 양이 전체 주식수에 비하면 적죠. 큰 영향은 없습니다. 때문에 지극히 당연히 미국에서 자사주 매입이라고 하면 첫번째(EPS증가), 두번째(기업 자신감) 목적입니다. '자사주 매입=주주가치 증대'인 셈이죠. 심플하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한국에서 백기사에게 신주를 발행하면 위법입니다.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게 자사주를 활용한 우호 지분 확보입니다. 자사주 매각이나 맞교환은 신주발행이 아니니 법적으로 허용됩니다. 조삼모사 같지만 어쨌든 현실이 그렇습니다.
때문에 미국에선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 자사주 매입 목적인 경영권 방어가 우리나라에선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니 자사주를 어디다 쓰는지 지켜봐야하는 형편입니다. 주주 입장에선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소각하는지, 아니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쓰려는 것인지가 중요해진 것이죠.
다만 원론적으로 보면, 주주환원 효과는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한 바로 그 시점에 발생합니다. 배당이 전체 주주에게 골고루 돈이 돌아가고, 자사주 취득은 그 주식을 판 일부 주주에게 돈이 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원론적으로 회삿돈이 주주에게 간다는 면에선 결국 주주환원입니다. 주가가 오르든 말든, 자사주가 다시 시장에 풀리든 말든 주주환원 효과는 자사주를 매입한 바로 그때 발생하는 것이죠.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용서는 안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죠.
얼마 되지도 않는 지분으로 회사를 마음대로 쥐락펴락했던 대주주 혹은 오너가, 주주환원이라고 기대했던 자사주를 경영권 지키겠다고 쓰면 실망감과 분노가 적지 않겠죠.
이건 미국과 한국의 주주문화 차이도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통 주주가 회사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오너나 대주주가 주인인 경우가 많죠. 그러다보니 일부 오너의 이익을 위해 주가가 오히려 낮은 게 더 유리한 말도 안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그럴 정도인데, 자사주를 주주가치 제고가 아닌 경영권 방어에 쓰는 건 놀랍지도 않네요. 씁쓸합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증권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