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택 stpmj 건축사사무소 대표 인터뷰
현실적 제약, 독창적 디자인 요소로 활용
“대립적 가치 속 균형점, 새 방안 도출 가능”
“건축을 대하는 태도가 젊음과 기성 나눠”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서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 인근 주택가엔 1980년대에 붉은 벽돌로 지은 다가구주택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는 다가구주택 난간에 두른 스테인리스 마감재가 번쩍이며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다. 에스티피엠제이(stpmj) 건축사사무소 ‘구의살롱’이다.
구의살롱은 도로면 위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 반지하 위에 1층과 2층이 올라간 1980년대 다가구주택의 전형이다. 현재는 반지하와 1층을 업무시설, 2층을 주택으로 사용한다. 당초 분리됐던 1층과 반지하는 계단을 통해 오갈 수 있게 했다. 1층 곳곳을 막았던 벽면은 철거를 통해 널찍한 테이블이 들어가는 업무공간으로 만들었다. 내부엔 철제빔과 벽돌이 그대로 노출돼 있고, 문이었던 곳이 창문이 되거나 아예 창문을 막아놓은 모습도 포착된다. 1층 천장까지 맞닿은 진열장에 빼곡히 놓인 각종 프로젝트 모형들은 건축사사무소임을 짐작게 한다.
구의살롱의 주인인 이승택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이 공간을 처음 접했을 때 ‘시대를 대변하는 주택’이라는 점에서 묘한 끌림을 느꼈다. 일대에 쌍둥이처럼 지어진 수십 채의 붉은 벽돌 주택, 방공호로 만들어진 지하층, 이촌 향도한 이들이 몰려들자 주거공간을 6개로 쪼갠 다가구주택 등은 당시 사회·문화적 흐름 속에 탄생했다. 이 대표가 옛 공간에서 돌이켜 볼만한 부분을 선별해 남긴 덕분에 이 주택에선 1980년대 준공 당시의 모습과 6가구가 살면서 개조한 흔적, 구의살롱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더해진 요소 등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구의살롱에서 만난 이 대표는 “이 집의 역사를 해부하듯이 드러냈다”면서 “외벽은 일대의 풍경 안에서 튀지 않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도, 낡은 난간은 위트 있게 금속으로 처리해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임미정 대표와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를 함께 운영하며, 부부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에스티피엠제이 역시 이들 부부의 이름 영문 앞글자 사이에 ‘플러스(plus)’의 ‘p’를 붙인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건축학 석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2009년 미국 뉴욕에서 실무 작업을 함께하면서 팀명을 정했다. 두 사람의 이름을 ‘앤드’(and)가 아닌 ‘플러스’로 이어 붙인 건 교집합이 아니라 합집합으로서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의미도 있다.
이들은 ‘도발적인 사실주의(provocative realism)’를 지향점으로 삼았다. 익숙한 전형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건물의 형태나 다양한 재료, 공간의 연출 등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열망을 담은 것이다. 이 대표는 “현실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와 기존 시스템을 넘어 진취적인 공간을 구현하고 싶다는 도발적 이상주의, 이런 대립적인 가치를 양쪽으로 극한까지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새로운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면서 “두 개의 성향이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프로젝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지난 2016년 은퇴한 70대 노부부의 의뢰로 시작한 경북 예천의 ‘시어 하우스’다. 박공지붕에 직사각형 몸체, 네모난 창문을 더한 전형적인 집처럼 보이지만, 지붕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슬며시 밀어낸 듯한 형태로 변화를 준 건물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1층에는 차양이, 밀어낸 쪽 지붕이 있는 2층에는 테라스가 만들어졌다. 집 전체를 특수 고열 처리한 소나무 탄화목으로 감싸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한 것도 특징이다.
이듬해 시멘트 회사 임원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 경기 이천의 ‘스트레이텀 하우스’는 콘크리트를 재료로 사용했다. 콘크리트의 재질감은 시멘트와 물, 골재 등의 배합에 따라 달라지는데, 총 30회에 걸쳐 타설하는 방식으로 지층처럼 보이는 입면을 나타냈다. 의뢰인의 요구와 정해진 예산 속에서도 다소 ‘성가신’ 타설 방식을 택해 변화를 준 사례다.
지난 2018년, 강서구 내발산동의 ‘5층 집’은 서울에서 진행한 첫 프로젝트다. 건축가는 부부와 세 자녀가 거주할 집을 최대한 압축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94.9㎡ 규모 대지에 높이 14.5m로 지어진 집은 사선 제한과 주차 규격 등 현실적인 제한을 오히려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다. 집 뒤편은 사선 제한에 따라 최고 높이(14.5m)에서 9m까지 깎아내린 듯 경사를 둬야 하는데, 이를 매끄러운 곡면 형태의 테라스로 만들었다. 1층은 부드러운 반 아치형으로 잘라내 주차 공간과 현관을 배치했다.
일반 주택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가로 70㎝, 세로 180㎝의 아치 창문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생활 보호 측면을 고려했다. 집 외벽은 붉은 벽돌을 사용해 통일감을 주되, 주차 공간과 현관 쪽은 깬 벽돌을 통해 질감을 달리했다. 이 대표는 “과일도 겉과 속이 다르게 보이지 않나.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익숙한 선형과 장면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면서 “수평적인 아파트의 삶에서 벗어나, 수직적인 주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이 대표는 최근 부여 도서관 및 문화센터 현상설계 공모 당선을 통해 문화 공간으로도 활동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는 필로티 구조를 통해 건물이 땅에 닿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상층부에는 띠의 형태로 180m 길이의 도서관과 생활문화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부지 내에서 문화재가 발굴되더라도 그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도서관을 완공할 방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곳곳에서 문화재 발굴 조사가 활발한 부여에서 이 사업이 현실적으로 진행되려면 다른 전략과 태도가 필요하다고 봤다”면서 “단순히 멋진 건축물에서 벗어나, 땅(사업대상지)이 가진 불확실성을 인정하니 방향이 보였다”고 말했다.
건축업계에서는 ‘주목해야 할 젊은 건축가’로 이 대표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이 대표는 “건축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가 기성과 젊음을 나누는 것 같다”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른 시간 내 집중해서 올바르게 해결하려는 태도가 바로 젊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관성에 따라 하던 대로 하는 건 배제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