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과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는 이달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박람회인 ‘2022 CES’의 주요 연사로 모습을 공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다른 재계 총수들의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출연은 더 주목을 받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정 회장(1970년생)과 정 대표(1982년)는 현대가(家)에서 각각 육상·항공 부문과 해상 부문의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하고 있어 이른바 ‘투선’ 체제에 이목이 쏠린다.
정 회장은 올 CES에서 로보틱스를 모빌리티의 미래를 결정할 솔루션으로 지목하고, 로보틱스와 메타버스를 결합한 메타모빌리티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만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에도 자동차 등 모빌리티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정 회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커넥티비티, 즉 사람과 로봇에 메타버스를 연결하는 것이 관심사”라며 “인류의 삶에 기여하고 싶기 때문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로보틱스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선 “로봇이 점점 인간과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매일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것처럼 언젠가는 사람들이 스팟(4족 보행로봇)을 데리고 다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특히 메타버스와 모빌리티를 결합한 메타모빌리티를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으로 제시하며 “이것만 해도 많은 기술이 필요하고, 가야 할 길이 멀다”면서도 “우리의 도전에는 한계가 없고, 우리는 우리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메타모빌리티 상용화 시점에 대해선 “잘 알 수 없지만 연구를 해가는 과정에서 정확한 기간이 나올 것 같다”며 “결국 메타버스에 달려있는데 기술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가까운 미래에 로봇과 함께 메타버스 세계에 연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가 올 CES 전시 주제를 친환경차나 자율주행차가 아닌 '미래 로보틱스 비전'로 정한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자동차에도 자율주행 로보틱스 기술이 들어가 있는데 로보틱스가 결국 자동차와도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로보틱스는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번 CES에서 저희가 생각하는 것을 평가받고, 방향성을 잡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CES를 통해 세계 무대에서 공식 데뷔한 정 대표는 현대중공업그룹을 기술 중심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작년 말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의 공동대표에 선임되며 총수 자리에 오른 정 대표는 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올해 CES에 처음 참가했다. 정 대표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으로 정 회장의 사촌 동생이다.
정 대표는 “1972년 창립된 현대중공업그룹에 2022년은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 새로운 50년을 시작하는 해”라며 “여러 차례 어려운 위기를 겪으면서 차별화된 기술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렵지만 기술 개발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는 덩치만 제일 큰 조선회사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앞서있는 종합중공업 그룹”이라면서 “CES 참가를 통해 저희가 갈고 닦는 기술의 미래를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향후 중점적으로 개발할 기술 분야로 자율운항기술과 친환경 선박, 수소밸류체인, 스마트 건설기계를 제시했다. 정 대표는 “자율운항은 해양모빌리티의 새로운 미래가 될 것”이라며 “친환경 선박과 수소밸류체인은 인류를 위협하는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수소 사업과 관련해 “수소경제는 당위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일뿐더러 혼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며 “우리나라가 수소 경제로 가려면 수소의 장거리 이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룹 핵심 산업인 조선에 대해선 “대규모 수주로 일감을 채워놨고, 선주들도 견고한 발주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히 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 것이라고 본다. 한국 조선업계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2025년까지 대표적 친환경선박인 수소와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추진선의 상용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3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가 현대중공업그룹이 추진 중이던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에 대한 미승인 결정을 내림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과 후속 조치에도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