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선의 값!] 9. 분기실적 발표 이후 넥슨 몸값 3분의1 증발

“충격이었다” 몸값 10조원 증발 넥슨 ‘미스터리’ [IT선빵!]
넥슨 던전앤파이터 홈페이지 캡처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34조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이 3주 만에 25조원 밑으로 떨어진 기업이 있습니다. 투자설명회(IR)에서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지난 12일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튿날, 주가는 무려 14% 넘게 급락했습니다. 수십조원 몸값의 기업 주가가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급락했다니.. 도대체 어느 기업일까요.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도 주가 굳건하던 이 기업

바로 넥슨입니다. 회사가 일본 증시에 상장돼 있어 일부 투자자분들이나 게임 유저분들은 모르셨을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게임 업계에 계신 분들은 입을 모아 “충격이었다”고 얘기하시더군요. 확률형 게임을 둘러싼 소비자들이 잇단 반발로 게임사들이 홍역을 치렀던 올 1~2분기, 또 다른 국내 대표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출렁할 때도 넥슨은 굳건히 상승세를 이어왔기 때문에 이번 급락은 더 크게 와 닿았을 겁니다.

“충격이었다” 몸값 10조원 증발 넥슨 ‘미스터리’ [IT선빵!]

실적 발표 이튿날 바로 급락세를 기록한 만큼, 원인은 지난 1분기 실적이 예상 밖으로 저조했거나 혹은 다음 분기 실적에 대한 회사 측 전망이 생각보다 더 암울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거예요.

그런데 앞서 1분기 실적에 대해서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했었죠? 매출은 883억엔, 영업이익은 433억엔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7%, 4% 증가했는데요. 매출을 중심으로 보면 중국, 북미, 유럽 등에서 모두 예상을 웃돌았고, 일본은 예상한 수준이었으며, 한국에서만 기대치를 밑돌았습니다. 국내에서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휩싸였던 ‘메이플스토리’ 등의 영향을 받은 탓인데요, 그렇다 해도 26%에 달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어요.

그렇다면 결국 주가 급락의 원인은 다음 분기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암울할까요. 넥슨은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545억~696억엔, 120억~165억엔 수준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요. 이는 작년 2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최대 16%, 영업이익은 최대 55% 줄어든 규모입니다.

역성장도 그냥 역성장이 아니다.

중요한 건 ‘역성장의 질’입니다. 아마 넥슨이 2분기에 역성장할 것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투자자가 예상하고 있었을 거예요. 지난해 2분기 넥슨은 전년 대비 20% 증가한 매출과 두 배 이상 급등한 이익을 거두는 등 엄청난 실적을 냈거든요. 그럼에도 주가가 급락한 것은, 넥슨이 시사한 역성장의 추이가 기대 이상으로 암울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출시가 다음 분기에도 힘들 것 같다”는 메시지가 나왔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충격이었다” 몸값 10조원 증발 넥슨 ‘미스터리’ [IT선빵!]
넥슨 던전앤파이터 홈페이지 캡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당초 지난해 8월 중국에 출시될 예정이었던 게임입니다. 원작 던전앤파이터는 지난 2005년 국내에 출시되고 2008년 중국에 진출한 뒤 매년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해온 넥슨의 대표적인 ‘효자’예요. 던파 모바일은 사전예약자만 6000만명을 넘기면서 올해 이후 넥슨의 성장을 책임질 게임으로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사전예약자 6000만명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요. 엔씨소프트가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휩싸인 리니지를 뒤로하고 전력을 다해 밀어붙이고 있는 게임 ‘트릭스터M’의 출시 전 사전예약자 수가 500만명 수준입니다. ‘몸값 20조원’ 크래프톤이 개발한 게임 ‘배틀그라운드’의 모바일 버전이 출시될 때 사전예약자 수가 400만이었고요. 물론 나라마다 수익성은 차이가 있겠지만, 6000만명이라는 숫자 자체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규모인지 감이 오시죠.

“충격이었다” 몸값 10조원 증발 넥슨 ‘미스터리’ [IT선빵!]
던전앤파이터 모바일 프로모션 영상 캡처

그랬던 던파 모바일이 출시 예정일 하루 전에 돌연 서비스 일정이 연기됐죠. 당시 넥슨과 유통사인 텐센트는 ‘미성년자의 게임 의존 방지 시스템’이 미비됐다는 점을 출시 연기 이유로 들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2월 ‘중국판 셧다운제’로 불리는 ‘미성년자 온라인게임 중독 방지에 관한 통지’를 시행하는 등 관련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최근 중국이 자국 게임업체들을 키워주려는 목적으로 자국 내 유통을 허가하는 ‘외자판호’ 발급 건수를 제한해 온 점을 봤을 때, ‘사전예약자 6000만명’의 쓰나미급 외산 게임이 중국에 출시되지 않도록 외압을 행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께 ‘내년 2월에는던파 모바일이 출시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커지기도 했으나, 지난 2월 IR에서 넥슨은 “텐센트가 던파 모바일 출시에 앞서 정리하고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2분기에도 출시 안 되나? 일단 후퇴!”

지금도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결국 지난 12일 IR에서 확인됐어요. “텐센트가 게임 출시에 필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넥슨이 설명한 전부였습니다. 지난 16일 텐센트가 온라인으로 개최한 연례 컨퍼런스에서 신작 라인업을 공개할 때에도 던파 모바일은 포함되지 않았어요.

결국 정리하자면. 넥슨의 주가가 급락한 것은 ‘다음 분기엔 혹시나’ 했던 던파 모바일 중국 출시 일정이 여전히 안갯속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000만명 중국인을 사로잡은 던파 모바일의 가치가 10조원이었고, 이에 대한 기대감이 미리 반영돼 있던 것을 이번에 반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