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실수요자 내 집 마련 부담 완화”
여당에선 LTV 90% 완화 주장까지 나와
오는 7월부터 DSR 40% 규제 적용돼
LTV완화 공염불에 시장은 싸늘
대출문턱 낮춰도 실효성 떨어진다는 지적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정부와 여당의 부동산 정책 기조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집값 안정을 약속하며 ‘집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던 과거와 달리 ‘내 집 마련의 길을 열어주겠다’고 나서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부담을 완화할 정책 지원을 공언했고 여당의 수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무주택자에 대한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기조 변화에도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당장 오는 7월부터 차주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규제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LTV,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주택 관련 대출규제를 추가로 완화한들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에 도움이 되겠냐는 것이다. 특히 송 대표의 ‘LTV 90% 안’에 대해선 현실성이 떨어지는 지적이 나온다.
DSR은 대출자가 연간 벌어들이는 소득에서 전체 금융부채의 원리금 생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담보가치만 따지던 주택담보대출에 DSR이 적용되면 소득에 따라 대출한도가 정해지게 된다. 소득이 낮을수록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것이다.
1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당내 부동산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부동산 규제 완화 방안을 논의했다. 김진표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위한 금융지원, 세 부담 완화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위는 부동산 정책 전반을 살피면서 무주택자·생애최초구입자를 대상으로 한 LTV·DTI 완화를 검토할 예정이다. 송영길 대표가 이날 LTV 90% 완화안을 재차 강조하고 나선 만큼 특위도 LTV 우대혜택에 대한 상향 폭 확대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출규제 완화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융당국은 실수요자에 대한 LTV 우대혜택을 10%포인트가량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단 LTV 90% 완화는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무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규제 완화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나 지나치게 완화할 경우 금리 인상, 집값 하락 등의 경기 변동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가계는 물론 국가 경제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다. 실제 과도한 LTV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됐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매행렬이 이어지며 올해 들어 진정세를 보였던 집값이 다시 뛸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크다. 차주별 DSR 규제가 적용되면 LTV를 90%까지 완화하더라도 실수요자 입장에선 대출가능 금액이 크게 늘어나지 않아서다. 현행 LTV 규제를 적용하더라도 저소득자의 경우 DSR 규제로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연소득 5000만원의 직장인이 서울에서 6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할 경우를 상정해 보면 현재는 LTV 50%를 적용받아 주택담보대출 3억원, 신용대출 7500만원으로 최대 3억7500만원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7월부터 DSR 40%가 적용되면 주담대 3억원은 그대로 받을 수 있지만 신용대출 한도는 3600만원 선으로 줄어든다. 이때 LTV가 90%까지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이론상으로는 5억4000만원까지 주담대 대출이 가능하지만 개인의 주담대 대출한도는 4억원 선에 불과하고 신용대출 또한 받지 못하게 된다.
금융권에선 청년·실수요자에 대해 DSR 40% 규제를 10%포인트 완화하는 방안이 적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의 추가 자금 통로가 좁아진다는 큰 틀에선 변화가 없기 때문에 LTV·DTI 등 대출문턱을 낮춘다 해도 그 실효성이 크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차주별 DSR 규제가 있는 한 LTV를 70%로 올리든 90%로 올리든 이론적으로는 소득이 많지 않으면 못 빌리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부동산 민심 수습을 위해 대출규제 완화를 언급하고 있으나 현 시점에선 큰 효과를 가져오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문 대통령의 최근 연설을 보면 집값 잡기를 포기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집값을 잡겠다는 어떤 신호도 없이 ‘살 사람은 사라. 대출 늘려주겠다’며 사실상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ehkim@heraldcorp.com